1) 무위(無爲)에 의지하는 동양 vs 유위(有爲)을 앞세우는 서양
우주를 이해하는 두가지 접근방법에서 자연스럽게 인간행동 지침이 배출된다. 동양의 무위(無爲)와 서양의 유위(有爲)가 그것이다. 무위는 글자 그대로는 "무행동"을 의미하지만, 때를 맞춘 움직임, 즉 위무위(爲無爲)를 의미한다. 새싹이 날 때(germinal stage) 그때 인간이 미리 행동하면 변화하는 미래의 상황을 예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자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룰 수 있다”라는 위무위의 뜻이 여기에 있다.
함이 없는 함을 실천하고, 일함이 없이 일함을 실행하라. (도덕경 63장)
동양문명에서는 변화속의 숨겨진 우연과 개연성을 고려하여 “미리 행동”하는 무위가, 다 자란 다음에 하는 행동 즉 유위(有爲) 보다 효율적이라고 여긴다. 즉 식물이 자란 후 행동은 뒤늦은 것이 되거나 반전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변화를 미리 예견하는 행동인 무위를 지향하게 된다. 서양의 유위사상은 인간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가져오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 서양문명을 대표하는 법률이 중요한 사례가 된다. 인간이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인간이 종교의 율법이나 인간의 이성에 근거한 법률이나 제도를 중심으로 인간사를 처리하자는 것이다. 서양의 유위사상에 비해 동양의 무위사상은 때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무위사상이 서양 사유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변화의 개념”을 핵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위의 반대말에는 유위(有爲), 인위(人爲), 작위(作爲)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인간이 목적의식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공동점이 있다. 무위와 비교하여 볼 때 모두 인간의 의도성이 부각되는 행동들이다. 인간이 도에 내재된 무위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위와 비교하여 인위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자연의 법칙 도에 반하는 행동을 뜻하는 작위를 무위의 반대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서양 문명을 비교하자는 차원에서는 서양의 행동을 유위로 사용하면 동양의 무위와 비교하기가 다른 단어인 인위나 작위를 사용할 때 보다 쉽다.
동양에서 무위 철학은 인간의 노력, 즉 유위 없이 일어나는 것을 중시한다. 무위에 의한 성취는 동양에서 인간의 노력과 의지에 의하여 당장 성취하려는 유위 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으로 간주된다. 가급적 자연의 길 즉 도의 길에 맡기는 것이 최선의 상태로 간주된다.
중국 역사에서 최고의 지도자 중의 하나로 꼽히는 청나라 강희제는 무위 라는 글자를 황제가 주재하는 회의실 입구에 현판으로 만들어 걸어 놓았다. 황제나 주요 관리 등 지도자들이 자신 만을 위한 정책이나 갑자기 생각난 것을 정책으로 정하여 백성을 괴롭히지 말라는 의미다. 즉, 함부로 법이나 훈령을 만들지 말라는 자신과 중신들에 대한 경고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경우 지도자 들이 자신의 확신으로 정책을 세우고 이를 신하들이 이용하는 상황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들은 법을 어기거나 새로운 법을 만들어 사익을 채우는 상황에 접하게 된다: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를 강제한다면 나라에 저주가 된다, 강제하지 않는다면 나라에 축복이 된다. (도덕경 65장)
노자와 함께 도교의 사상을 대표하는 장자는 인간본성과 관련된 무위의 배경을 설명한다. 우주의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자라난다. 모든 싹과 형태가 앞으로 자라나갈 방향을 내포하고 있다는 변화론에 입각하고 있다. 결국 성숙함과 부패함, 그리고 그 사이에 일어나는 계속적인 변화와 변형이 모두 여기서 내재되어 있다. 장자는 정치가 민생에 간섭하지 말고, 즉 유위를 작게 하고, 무위로 대하도록 설명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본성이 있다. 누구나 옷을 만들어 입고, 밭을 갈아 먹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다. 그래서 하늘은 무위로 대하며 간섭을 하지 않는다. (장자 외편 마제 1장)
인도 철학에도 무와 유 또는 무위와 유위로 번역할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이 있다. 무위는 산스크리트어 “asamskrta”로 표현되며 '창조되지 않은', '형성되지 않은', '제약되지 않은'을 의미한다. 반대로 유위는 “samskrta”로 표현되어 '창조된', '형성된', '제약된'을 나타낸다.
그러나 불교가 발원한 인도철학과 도교에서는 유무를 구별하는 동양철학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인도철학에서는 무가 본질이므로 유에는 별도로 가치를 두고 있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색즉공 공즉색"이라는 철학도 색 즉 유의 가치를 공 즉 무에 중점을 두고 보아야 한다는데 뜻이 있다. 반면, 도교에서는 유가 무에서 나왔지만 음양사상의 영향을 받아 유, 무가 모두 중요하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천하 만물은 유에서 연유하며, 유는 무에서 연유한다”. 인도철학에서 기원한 불교에서 도교 보다 휠씬 중요하게 무無, 허虛, 공空을 중시하는 것도 이러한 연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사에서도 불교는 인간생활이 가져오는 모든 고통에서 초월하는 경지, 즉 니르바나를 지향하지만, 도교에서는 인생사의 기본이 되는 의식주가 인간에게 주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우주관과 인간사를 중시하는 동양문명에서 행동을 강조하는 유교가 원천으로 돌아가라는 도교와 공존하게 된다. 동양인은 유교와 도교를 모두 아우르는 경우가 많다.
무위는 인간의 유위를 견제하여 무위로 유위에 대하여 균형을 찾자는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인간의 유위가 자연적인 도를 혼돈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면이 강조된다. 서양에서는 신은 인간이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율법을 선지자를 통하여 인간에게 전해주며, 법을 어기는 것은 신을 배반하고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경고하며 법을 존중하도록 만들면서 유위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도의 차원에서 보면 법치도 결국 인간이 행위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유위에 해당하게 된다. 신은 예언자를 통하여 인간에게 자신이 지시한대로 항상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도록 요구한다. 절대적인 신의 강력한 힘을 배경으로 한 행동과 집중력을 유발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신과 예언자의 구분이 어렵게 되는 상황이 전개된다. 예언자 간의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이런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동양문명에서는 유위 보다 무위를 따를 것을 권고한다.
왜 무위는 유위에 대한 경고를 하는 것일까? 역사적 의미에서 최근 우리는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유위에만 의지하는 인간의 거대한 실수는 20세기 서양의 이데올로기 시대에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인간은 절대진리를 파악할 수 없다는 도가도비상도 라는 도의 기본철학과 대치되는 서양에서 시현론에 몰두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서양 사상계는 한 때 시현론을 통하여 인간의 이성의 능력을 극대화하여 인간이 이성으로 절대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망상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이 절대진리를 파악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역사에서 실현한다고 하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잔혹한 행위를 거침없이 실행하였던 적이 있었다. 파시즘과 공산주의 라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로 표현된 절대진리를 실현하면 인간사회에 이상향이 실현된다고 믿었다. 이런 이상향을 위하여 나아가는 길에 윤리를 버리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고 이를 거침없이 시행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절대진리가 가짜일 경우 결국 그들이 저지르는 잔혹한 행위만 이데올로기의 정체성으로 남게 된다.
인간본성이 항상 선하다면 또는 선하게 만들 수 있다면 무위가 필요 없다. 인간본성을 따라 가면 된다. 그러나 인간본성에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강력한 이기심이 있다. 인간의 이기심은 이성을 최대한 이용하여 확신을 키워 나가게 된다. 공익에 앞서 사익을 취하도록 하는 성향이 인간본성에 존재하고 있다. 이기심은 탐욕으로 쉽게 변형되며 인간사회에 항상 존재하게 된다. 여기서 인간이 탐욕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소인이 되느냐 아니면 윤리를 지키는 군자가 되느냐 하는 변화는 완전히 개인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 동양이 파악한 인간 본성이다.
윤리는 타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배움과 성인의 행동을 따르는 데서 생긴다.
(순자 23:5)
그렇다고 이기심을 무시할 수도 없다. 강력한 이기심은 인간사회 구성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양문명에서는 유위의 잘못된 발현과 발전을 무위로 조정하자는 것이다. 인간본성에는 강력한 이기심과 동시에 남을 생각하는 약소한 이타심이 존재한다. “강력한 이기심과 약소한 이타심” 간의 경쟁과 조화, 이것이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근본 요소다. 이러한 경쟁에서 사회는 질서유지를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먼저 추구하고자 하는 개인의 이기심에 대하여 항상 경계하여야 한다. 이런 이유로 무위사상에서는 법률보다 윤리가 인간사에서 상위에 존재하게 된다.
무위사상은 적어도 2500년 전에 동양문명에 확고히 뿌리를 내린 개념이다. 즉 끊임없는 전쟁과 쟁패의 시기인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생성, 정착된 것이다. 무위사상을 내세운 사상가들은 춘추전국시대의 난맥상의 근저에 하나의 근원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이에 대비하는 철학으로 시작하였다. 그것은 곧 인간의 탐욕이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든지 인간 간의 관계에서든지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탐욕과 재산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탐욕이 인간사의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본 것이다.
행하면 실패한다. 집착하면 잃는다. 무위로 행함으로써 실패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잃는 일이 없다. (도덕경 64장)
무위사상은 동양문명으로 하여금 무위를 지향하면서, 유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기본 골격을 보이고 있다. 도덕경은 현실 참여를 부인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도가의 무위 사상이 더 근본적이라고 여기지만 유가의 현실참여 사상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윤리에 중점을 두고 최대한 자연의 道와 가까운 인간사회의 윤리가 어떠한 것인지 탐구하는 노력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도가와 유가의 차이는 무위와 행위 간의 차이이다. 현실적인 인간 사회에서 행위가 필요하지만, 이것이 유위로 타락할 가능성이 크므로, 이에 대한 경고로 유위에 대한 무위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도교의 무위 중시 입장은 도덕경에 잘 나타나 있다:
바퀴살이 30개 모여 하나의 바퀴를 이룬다. 그 중간의 공간이 수레를 구르게 한다. 창을 뚫고 문을 내어 방이 만들어진다. 빈 공간이 있음으로써 방은 쓸모가 있다. 존재를 이롭게 하는 것은 무위가 그를 사용함에 있다. (도덕경 11장)
도교는 무위사상으로 지배자나 정부가 개인의 생활에 간섭하는 것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윤리관을 동양문명에 기초로 확립하였다. 특히 장자에서 강조되는 무위자연 사상은 인간이 법률, 윤리, 습관, 풍속 등 인간이 만든 문화의 장식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해방되어, 자연 속에서 인생을 찾으라는, 유위에 대칭되는 무위의 뜻을 핵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동양문명이 다른 어떤 문명보다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개인의 자율을 중심으로하는 사상을 퍼트렸다. 그리고 탐욕으로부터 해방된 경제윤리, 또한 궁극적으로 유교와의 합작으로 교육, 근면, 근검절약, 지도자의 청렴 등을 강조하는 건전한 경제의 틀을 만들어 놓았다.
반면 서양은 무위에 대하여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유위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램프를 밝힐 때, 램프의 빛은 방안의 모든 사물을 밝힌다”고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잘 자라 열매를 맺었는데, 열매가 삼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백 배가 된 것도 있었다. (마태복음 4:3-8)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마태복음 5장)
소금이나, 빛과 같이 노력하는 것은 유위다. 상기 예에서 보듯이 질그릇을 만들고, 방을 만드는 것은 무위다. 무위사상으로 표현되면서 동양문명의 출발점을 이루는 무극중심과 서양문명의 출발점을 이루는 창조중심의 대비가 각각 동서양문명의 기저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 지 모른다.
동양문명에서 인간의 행위를 법률과 윤리의 문제로 본다. 서양문명은 행위에 神의 의지와 율법을 개입시킨다. 神에 대한 복종-불복종을 기준으로 인간의 행위와 유위를 선악의 차이로 보는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유위에 대한 정의가 대부분 神에 대한 태도로 규정된다. 즉 우상을 섬기는 것, 神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행위에 대한 규정을 율법으로 정했기 때문에, 유위에 대하여는 극도로 엄중한 神의 처벌이 기다리게 된다. 따라서 서양문명에서는 神의 뜻을 따르는 언행은 선이 되고, 이를 어기는 언행은 악을 행하는 죄가 되고 징벌의 대상이 된다. 결국 서양에서는 인간의 행위가 인간의 영역을 넘어 神이 개입하는 선악, 죄, 벌, 고통 차원의 문제가 된다. 즉 윤리가 아닌 율법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대 사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출애굽기 20:5-6)
유대교는 神의 형상화를 경계하고 정의를 가급적 피하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을 계속한 이유는 神에 대한 정의가 계속되고 의인화 과정을 겪게 되면, 神은 결국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예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神이 계시를 통해 인간사에 개입하는 행위는 그 행위가 많아지고 계속될 경우, 그 행위의 일부분이 계시를 전달하는 인간에 의하여 왜곡되어 행위가 아닌 유위가 될 위험이 있다. 이는 결국 神의 절대성에 문제를 일으키는 아주 중대한 사태를 일으킨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종교의 절대적 권위자의 유위로 인하여 문제가 된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에 종교개혁의 대상이 된 바도 있다. 비록 서양종교의 본질은 아니지만, 서양종교에서는 인간이 상상하는 대로 神에게 행위를 계속 시킴으로써 때로 그것이 유위가 되어버려 이제는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2) 무위의 도는 인간사에 무관심 vs 유위의 신은 인간사를 주관
도는 인간에 대하여 무위로 접근한다. 의인화라는 절차를 거부하면서 인간사에 무관심하다. 도는 인간에게 보여줄 어떤 인간과 같은 모습이 없다. 어떤 이름도 거부하며 보이지 않는다.
도는 보이지 않는다. 이름도 없다. (도덕경 41장)
반면 신은 인간에 대하여 유위로 접근하여 인간사에 깊이 관여한다. 신은 의인화(擬人化)라는 유위의 현상을 거치게 된다. 서양의 신이 기적을 일으키고 인간사에 개입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것은 신이 사람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이를 의인화(擬人化, anthropomorphization)라고 표현한다. 의인화는 그리스어로 사람을 의미하는 안트로포스(anthropos)와 형태를 의미하는 모르프(morphe)를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다. 즉, “신이 사람의 형태를 가지게 된다"는 의미다.
신의 의인화는 창세기에“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라는 선언으로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의인화를 통해 신은 사람의 형태를 가질 뿐만 아니라 선악, 정의, 질투, 분노 등 사람이 가지는 감정도 가지게 된다. 신이 인간 처럼 되면 어떤 상황이 일어날까? 인간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신은 인간에게 강력하고 직접적인 전달력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문제도 생긴다. 의인화되는 신은 스스로 자신의 개성을 인간적으로 한정함으로써 신의 절대성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게 한다.
세상에는 신이 사람처럼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고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사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길을 잃고 있는 사람들이다…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인 신을 그러한 속성으로 상상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스피노자 윤리학, I- Prop. XV)
그리스의 철학자 중에서 의인화의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다. 크세노파네스 (Xenophanes, 570-475 BC 경)가 하나다. 그는 “위대한 신은 절대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인간의 모양이나 마음을 닮고 있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크세노파네스는 BC 6세기 사람이며,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자 중에서 헤라클리투스와 함께 불현론을 주장한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크세노파네스는 신은 인간의 형태를 가지게 되는 것은 인간사에 직접 간섭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렇게 되면 신과 인간 간의 호환성을 유발하여 인간들은 신 처럼 되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고 보았다. 38 동시에 인간 부족들이나 동물들은 각자 자신을 닮은 여러가지 신을 만들게 된다고 패러디하고 있다.
이디오피아인은 그들의 신이 검은 피부에 넙적 코를 가졌다고 생각하며, 트라키아 인은 그들의 신이 푸른 눈에 붉은 머리를 가졌다고 생각 한다…… 만약 말이 신의 얼굴을 그린다면, 말의 얼굴처럼 그릴 것이다. 소는 자신의 신을 소의 얼굴처럼 그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형체도 말이나 소의 모양을 따라 그리게 될 것이다.39
크세노파네스 이후에 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 5세기경 철학자)도 신의 의인화에 대하여 반대하고 있었다. 신이 인간의 형태로 표현되면, 이는 결국 인간이 신의 권위를 빌려 신처럼 행동하려고 하는 위험한 행위로 직결될 것이라면서 이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었다.
의인화 과정은 동양문명에는 생소한 개념이다. 그 이유는 도가 인간처럼 되는 이러한 현상이 동양에서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도덕경에서는 계속하여 도가 인간 처럼 되지 말아야 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절대진리는 어떤 형대로 든 표현되면 절대성을 잃어버리고, 도는 더 이상 도가 아니라는 불현론의 핵심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반면 서양의 신은 의인화의 과정, 즉 “사람의 형태를 가지게 되는 과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명확해 진다. 유대교 신의 의인화 과정은 모세와 신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다. 신은 모세를 통하여 신의 존재를 설명하면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따라야 할 모든 율법을 제시했다. 이 율법에 따라 유대교는 일신교의 종교로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신은 종교를 통하여 인간사를 주관하게 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으로 이끌었다. 이 도중 시나이 산 근처에서 모세는 신으로부터 십계명을 받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거역할 수 없는 신의 율법이 된다. 구약 성서의 출애굽기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모세와 신 사이에는 매우 흥미로운 대화와 교섭이 이루어졌다. 유대인들은 캠프 바깥에 신과의 만남 장소로 텐트를 설치하였고, 모세는 이곳에서 신과 대화를 시작했다. 신이 인간의 말을 사용하게 된다:
하느님은 모세와, 친구 간에 이야기하듯이, 일대일로 대화를 나눈다 (출애굽기 33:11).
그때 모세는 유대인을 설득하기 위한 증거로서 하나님이 “영광, 즉 자신을 보여줄 것”을 요청한다 (출애굽기 33:18).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너는 나의 얼굴을 보면 안 된다. 왜냐 하면 누구도 내 얼굴을 보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어서 하나님은 “근처에 바위가 있는데 네가 거기 있으면, 내 영광이 지나갈 때, 내가 너를 바위틈에 숨기고 내가 다 지나 갈 때까지 너를 내 손으로 덮어줄 것이다. 그 때 내가 손을 치우면 너는 내 뒷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얼굴은 보여져서는 안 된다” (출애굽기 33:20-23). 이와 같이 신은 인간과 같아진 자신의 모습을 모세에게 보여주게 된다.
너는 내 뒷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애굽기 33:23)
아주 흥미롭게도 도덕경에 신과 도의 뒷모습에 관한 모세 5경과는 정확히 반대되는 표현을 하고 있다. 그것은 신은 그의 뒷 모습을 인간에게 보여주지만, 도는 어떤 경우에도 도의 뒷 모습을 인간이 볼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도는 뒤를 따라가도 그 뒤를 볼 수 없다. (도덕경 14장)
의인화된 서양의 신은 모세에게 인간의 모습을 한 자신의 뒤를 보여준다. 그러나 도는 의인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처럼 앞이나 뒤가 없다. 그래서 도는 앞을 볼 수도 없고, 인간이 설사 도의 뒤를 따라와도 보여줄 뒤가 없다고 정의한다.
서양의 신은 동양의 도와는 달리, 이미 인간과 같은 얼굴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과 직접 대화를 하고, 손가락으로 글까지 쓰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인간사에 신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데 활용된. "하나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모세와 말씀을 다 하신 후, 자신의 손가락으로 쓴 돌로 된 두 증언판을 그에게 주셨다" (출애굽기 31:18). 창세기에 따르면, 인간은 신의 모습대로 만들어졌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이미 "인간을 하나님의 모습대로 만들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신의 의인화는 이미 방향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창세기 1:26-27)
동양의 도는 서양의 신과는 달리 일관되게 의인화를 거부한다. 무와 무위는 도의 무(無)의인화로 유지된다. 도덕경에서 도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의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의지를 보인다. 도는 항상 존재하지만 인간사에 대해 개별적으로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보거나 부를 수 없다.
도는 언제 어디에나 있는 것인데, 행동도 없고 형체도 없다. 도는 전할 수는 있어도 받을 수는 없으며, 터득할 수는 있어도 볼 수는 없다. (장자 내편 대종사大宗師)
이렇게 의인화를 거부하면서 도는 유와 유위에서 나오는 존재론도 함께 거부하게 된다. 존재론 대신 동양은 우주는 항상 변하고 있다는 변화론을 따른다. 변화론의 틀 속에서 무와 무위을 동양 사유의 핵심으로 삼게 된다.
3) 음양론은 인간사의 변화론 vs 선악론은 인간사의 존재론
무를 근거로 한 변화론은 동양 사유에서 음양론을 표현된다.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해 나간다. 그 변화는 음양처럼 바뀌어 나갈 뿐이다. 산에 햇볕이 없을 때는 음이 되고, 햇볕이 비추면 양이 된다. 인간사도 자연의 변화론을 원용하여 음양론을 따른다. 무와 유가 변화하면서 결국 무로 돌아가는 인간사에서 절대성을 가진 선악의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음양론의 본질이다.
서양 문명에서 무(無)는 악의 존재로 취급된다. 이미 선악론의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 선과 악 모두 존재론적인 가치를 가지게 된다. 유(有)는 어두움과 무질서를 퇴치하여 밝은 세상과 질서를 만들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위 사상은 서양의 존재론에서 창출되며, 필연적으로 선악론을 동반하게 된다. 자신을 지지하는 인간은 선하고 그렇지 않은 인간은 악하다는 구별이 없으면 계시종교의 신은 존재할 수 없다. 신이 인간처럼 되면서 인간이 가진 감정 중에 가장 강력하고 간편한 선악론을 사용하게 된다.
인간도 신이 창조한 특별한 존재다. 이러한 창조의 중요성은 서양과 중동지역의 천지창조 신화에 연관된 "카오스와의 투쟁"(struggle against Chaos) 이야기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인간이 바다의 괴물, 용, 커다란 뱀과 같은 카오스의 상징으로 나타나는 괴물들을 무찌르며 진실한 “존재”가 시작되었다는 신화가 등장한다. 이러한 존재의 시작을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곧 창조, 존재의 시작이 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다. (요한 복음 1:1)
그리스 철학자인 헤시오드(Hesiod)도 유사한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태초에 카오스가 있었고, 이로부터 우주와 질서를 의미하는 코스모스와 함께 여러 신들이 탄생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나쁜 카오스를 이기고 좋은 질서가 창조되었다는 전제와 과정은 결국 서양문명을 선악론으로 진행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유세계는 서양에서 중세 천년을 거쳐 르네상스 초기에 이르기까지 서양 사상계를 지배하였으며 선악론은 이신교의 출현이후에도 계속 서양문명의 핵심으로 남아있게 된다.
서양 계시종교의 신이 기적을 일으키고 의인화 과정을 겪은 후에 나타나는 특성 중 하나는 "신은 인자하다"라는 선언이다. 신을 반대하는 것은 악이다. 계시종교에 필수적인 선악론이 이렇게 등장한다. 서양의 선악론은 세상 만사를 둘로 나누어서 보는 이원대립론의 핵심이 된다.
주님께서는 선하시고 바르시니 죄인들에게 길을 가르쳐 주신다. (시편 25:8)
동양문명에서는 인간이 피하려고 하여도 도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고 이를 피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반면 계시종교에서 신은 신의 은총(Grace)에 의하여서 만 인간에게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이 두가지 설명을 비교하면, 도는 목적론이 아니라 변화론과 우연론을 따르게 된다. 우리의 행동이나 결정은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우연적인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것 이상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원인과 결과의 연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계시종교에서는 “신은 인자하다”는 주장이 계속 되풀이된다. 그래야 인간이 자신을 창조한 신에 의지하여 살게 된다. 그러나 동양의 도는 “자연은 인자하지 않다”라고 도덕경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동양의 우주관은 자연과 우주에는 목적이 없다는 관측과 맥을 같이 한다. 서양의 신이 창조한 인간과 자연은 당연히 목적을 가지게 되고, 인간은 자신을 창조한 신이 인자하다고 느껴야 한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생겨난” 자연은 알 수 없는 존재이고 목적이 없고 인간사에 간섭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동양의 우주관으로 나타나고 자연-인간 간의 관계로 표현된다.
자연은 어질지 않다. 만물을 쓰고 나면 버린다. (도덕경 5장)
서양의 이원대립론이라는 우주론은 인간사에서 곧 선악론이라는 철학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서양에서 신이 인간사에 개입함으로써 선악론을 서양 역사와 철학의 근간으로 만들게 된다. 창세기에서 인간 창조에 이어 바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선악에 관한 이야기다:
여호와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께서 아심이니라. (창세기 2:17, 3:4)
그리고 곧 이어서 아담과 이브의 첫 아들인 가인이 둘째 아들인 아벨을 살해하는 죄, 즉 악을 저지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를 통해 신은 선과 악을 태초부터 구분하게 된다. 신은 선의 편에 서 있다. 40 이러한 선악론은 기독교 성서에서도 여전히 핵심문제로 다루어진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막 10:18)
계시종교에서는 선악은 신이 준 율법의 문제로 바뀌게 된다. 신은 선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사람은 벌을 주는 징벌의 신이 된다. 선악의 징벌은 율법의 명령이 되고 그 상벌은 가혹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신의 선악론을 무서워하게 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 (출애굽기 20:5-6)
서양의 선악론은 죄와 벌에 중점을 두어, 악을 행한 사람에게 벌을 내리고 선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는 형태로 인간에게 작용한다. 이렇게 되면, 죄와 벌을 판단하는 율법이 중요해지게 된다. 모세의 5경 중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3권은 모두를 위한 정확하고 엄격한 율법과 징벌로 가득 차 있다. 반면, 도덕경에는 징벌에 관한 아무런 표현도 없다.
동양의 음양론은 선과 악이 아니라 길과 흉으로 인간에게 작용한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며 스스로 도를 따르거나 어기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길과 흉이다. 동양에서의 길과 흉은 율법보다는 윤리에 의해 정의되며, 이는 서양 사상과 대비되는 도덕경과 논어의 중요한 특징이다. 동양 사상에는 율법처럼 강제적인 명령어보다는 조언이나 권유의 형태로 이루어진 내용이 많다: “군자는 도를 지켜서 길하고 소인은 도를 어겨서 흉하다.”
대리석과 돌로 집을 짓는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목재로 집을 짓는다. 집을 지을 때의 상량의 역할은 동양에서 음양론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워 집의 골격을 만들고, 이 골격 위에 극(極)을 만든다, 즉 상량을 얹어 놓게 되는 것이다.
상량은 기둥과 지붕 사이에 설치된다. 상량이 없으면 집은 무너지게 된다. 따라서, 상량을 잘 설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 집을 지을 때 상량식이라는 특별한 의식을 거행한다.
상량이 설치되면서 위치가 변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음양론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상량이 끈에 매달려 올라가면서, 위아래, 좌우, 앞뒤가 바뀌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모든 것이 상대적이며, 변화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상량이 없어지면 모든 상하, 좌우, 앞뒤의 구분이 사라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무극(無極)의 상태다.
음양론은 이러한 물리적, 시간적, 생물학적 차이에서 출발하여 점차 확대되어, 미와 추(美-醜)와 같은 미학적 차이, 선과 악(善-惡)과 같은 도덕적 차이, 그리고 이쪽과 저쪽(차와 피 此-彼), 남과 나(彼-我)와 같은 사회적 윤리적 차이를 포함하게 된다. 음양이라는 두개의 개념은 서로 보완적이며, 한 요소가 없으면 다른 요소도 존재할 수 없다.
동양문명에서는 우주는 항상 변화하는 것이며 변화는 음양처럼 바뀐다는 음양론을 주장한다. 인간사에서 선-악의 구분이 절대적이 아니며 따라서 선악 보다는 호-불호(不好)의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선-악은 결국 호-불호 처럼 결국 변한다고 보고 있다:
선하다는 것과 악하다는 것의 차이가 얼마이겠는가? (도덕경 20장)
동양에서는 도덕경과 유교 경전에서는 선악의 문제를 서양과 다른 방법으로 해결했다. 선과 악은 인간의 것이며 자연이나 도와는 무관하다는 사상을 확립했다:
자연은 인자하지 아니하다. 만물을 쓰고 나면 제사 후 짚으로 만든 인형처럼 버릴 뿐이다. 성인은 인자하지 아니하다. 백성을 쓰고 나면 제사 후 짚으로 만든 인형처럼 버릴 뿐이다. (도덕경 5 장)
동양에서는 도가 자연 그대로 인간에게 접근함으로써 선악론이 아니라 자연에 있는 변화론을 심어주게 된다. 산은 시간에 따라 밝음과 어두움을 변화시키며 표현한다. 변화론은 음양 사상을 통하여 동양 사유의 근원이 된다. 서양의 신이 일찌감치 선의 편에 서는 반면, 동양의 도는 선과 악을 초월하고 그 피안을 선택한다. 서양문명은 선악론을 동양문명은 음양론을 사유의 중심으로 삼게 된다.
음양론과 동양의 윤리 vs 선악론과 서양의 율법
계시종교를 중심으로 한 서양문명은 무와 유에서 유를 중심으로 하고, 행위에서도 무위와 유위 중에서 유위를 중시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무와 유를 완전히 가르면서 이원대립론을 펴 나가게 된다. 서양문명에서 밝음과 어두음, 비존재와 존재 등은 모두 조화가 아니라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선악론은 인간사에서 율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반면 자연 철학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의 도는 밝음과 어두음, 비존재와 존재를 함께 어우르는 철학적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음양론은 인간사에서 윤리를 중시하게 된다.
동양의 변화론은 서양의 존재론과 대비를 이루는 우주관과 관련된 철학적 사유다. 서양의 존재론은 신의 천지창조에서 시작하는 서양철학의 핵심이다. 존재론에서는 변하지 않는 인간본성을 근거로 하는 율법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유대교의 율법은 유대교 선지자들이 신으로부터 받은 계시로, “신의 언어”(Word of God)다. 신은 궁극적인 존재(Ultimate Being)로서 창조된 존재의 발현, 즉 유(有)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점이 중요시된다. 서양 인간사는 유위사상에 입각하는 율법을 중시하는 전통과 철학이 그대로 현대사회까지 계속된다.
서양 문명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전통과 철학은 서양의 법률, 제도, 모델을 중시하는 형식으로 발전한다. 되풀이하지만 이러한 철학은 창조된 존재는 영원히 존재한다는 존재론에 입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은 자체의 법, 제도와 모델은 영원한 존재론에 근거한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과하고 이들 법, 제도와 모델을 서양문명의 전파 수단으로 삼게 된다.
법률의 중요성은 그리스-로마 문명에서 이미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서양 역사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법을 주는 사람"(Lawgiver)으로 묘사된다. 그리스의 7대 현인 중 가장 유명한 솔론(Solon, 630-560 BC)은 특히 "법을 주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법을 잘 만들고 지키게 하는 사람이 서양에서 지도자가 된다. 반면, 동양에서는 사회지도자를 지칭할 때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도교에서는 성인(聖人), 유교에서는 군자(君子)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법률 보다는 윤리성을 강조하는 지도자를 지칭한다. 군자는 서양 번역어로는 각종 무의미한 용어가 쓰이고 있지만, 정치윤리적 “지도자”(leadership)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타당한 번역이 된다.
법률과 윤리의 관계가 동양에서 어떻게 정리되어 왔는지 살펴보면 동서양 문명의 차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동양에서도 기원전 전국시대처럼 법이 중요시되고 법이 중심 역할을 하며 전국시대를 끝내고 통일국가를 실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적이 있다. 이 당시 법은 변법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법에 의하여 봉건제도를 종식하고 군현제로 국가를 운영하자는 혁신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 중국의 법치에서는 상앙(390–338 BC), 한비(280–233 BC), 이사(280–208 BC), 같은 사람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상앙이 활동하던 시기는 왕의 친척세력 들이 권한을 독점하는 봉건제도식의 오랜 전통을 유지하던 때였다. 상앙은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왕의 친척세력과 평민간의 평등을 강조하는 법치를 주장하였다. 그는 귀족을 특별 대우하는 구 패러다임을 버리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법을 국가의 근본으로 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행하는 변법을 적극 추진하였다.
상앙은 왕의 친척 등 봉건세력과 20년간 투쟁하면서 토지 귀족을 해체하고 부유층에게 중한 세금을 물었으며 빈농에게 토지 및 농업 자금을 분배하는 법치를 시행하였다. 모든 백성이 가난에서 벗어나며 국가가 성장하면 자기 몫이 있다는 기대를 걸게 되었다. 결국 왕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변법정책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토지귀족의 미움을 받게 되어 20년 동안 그를 돕던 왕(진나라의 효공)이 서거한 이후 상앙은 사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봉건제도를 군현제도로 바꾸는 혁명적인 패러다임은 살아 남았고, 상앙의 법치는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1세기 반 만에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이루면서 진시황이 봉건세습제의 250년 동안 계속된 전국시대를 끝내고 중앙정부가 직접 통치하는 군현제의 천하통일(221 BC)을 이룩했다. 이때 진시황이 법가 출신의 이사를 승상으로 활용하였다. 법가의 대표적인 저술은 한비(韓非)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군현제가 실현된 통일국가에서는 정치와 행정을 통하여 평화와 안정을 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법은 국가의 통치수단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국가의 정상적인 정치와 행정을 도와주는 윤리나 무위를 포함하는 도교와 유교의 철학과 공조하게 된다. 결국 “외유내법”(外儒內法) 또는 “외도내법”(外道內法)의 형태로 유교와 도교의 윤리나 무위를 밖으로 내세우면서 내부의 법치로 통일국가 운영에 기여하게 되는 형식을 갖추게 된다. 윤리를 중심으로 하는 덕치(德治)가 법치보다 중요해지게 된다.
이러한 동양의 “윤리를 내세우면서 법률도 지킨다”는 사상은 음양론에 의하여 잘 설명된다.
동양의 우주관은 무극-태극의 구조를 중심으로 한다. 둘 다 모두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 동양에서는 무극이 태극보다 우선한다고 본다. 반면 서양의 우주관은 카오스에서의 창조를 강조하며, 창조가 카오스(무질서)를 극복하고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차이는 동양과 서양이 음양론과 선악론을 기초로 하는 문명을 가지게 된 근거가 된다. 결국, 동서양은 자신들의 문명의 기초에 서로 대비되는 우주관을 가지게 되었다. 동양은 무극과 태극의 변화를 중심으로 보완과 음양의 원칙을 따르는 반면, 서양은 카오스와 창조 사이의 대립적이고 선악적인 원칙을 중심으로 삼게 된다.
동양 자연철학의 사상들은 “우리의 삶은 끝이 있지만, 지식은 끝이 없다”(吾生也有涯 而知也无涯)는 원칙을 받아들이고 있다. 시현론에 따르면, 인간은 지식의 끝에 도달하고 영원한 진리에 접하게 되면서, 많은 경우 선악론으로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동양에서의 지식은 끝이 없다는 철학에 입각하고 있다. 즉 불현의 원칙을 존중하게 되면, 종교나 형이상학적 이론과 같은 한가지 사상에 경도되어 진실에 모든 것을 걸고 이를 펼치기 위한 선악론적인 투쟁을 멀리하자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서양 패러다임의 세계지배에 따라 서양의 법률 중심의 체계와 조직, 관습에 대하여 너무나 많은 사례를 접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동양의 윤리 중심의 문명적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BC 4세기에는 제 나라의 수도에서 문화와 학문을 활용하려는 제 나라의 정책 덕분에 많은 사상가들이 모여 서로 각자의 사상을 토론하고 다투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상황이 이루어졌다. 다양한 학설이 토론되고 융합되는 직하학(稷下學)이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사상가들은 만물제도(萬物齊道), 전성보진(全性保眞), 정욕과천(情慾寡淺), 견모불욕(見侮不辱), 금공침병(禁攻寢兵) 등의 윤리적인 철학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철학은 그후 2천년간 동양에 윤리 중심의 문화를 퍼트리는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윤리 중심의 철학은 서양 존재론에 입각한 선악론의 대립이 아니라 동양 변화론에 입각한 음양론의 보완이라는 사유에 근거하고 있다. 만물제도(萬物齊道)의 사상은 “모든 것이 하나의 도를 따라 궁극적으로 일체화된다”는 사상이다. 이는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으로 발전하였다. 제물론은 인간이 사회의 좋고 나쁜,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의 판단을 넘어섰을 때, 즉, 나와 너의 상대적 영역을 벗어났을 때, 인간은 천지만물과 하나가 됨을 경험한다는 사상이다. 제물론의 한 예가 바로 장자의 유명한 호접몽(胡蝶夢) 입니다. 즉, 꿈에 나비가 되어 마음대로 날다가 깨어나서 나비와 나를 하나로 보는 생각에 잠기는 일화가 그것이다. 전성보진(全性保眞)은 “인간이 명예나 탐욕 같은 타고난 본성의 일부에만 집중하여 균형을 잃고 추구하다가 자신을 망치지 말고, 태어난 생에 대한 의지 전체와 그 표현인 몸을 보존하자”는 사상이다. 장자에 와서 “자연스러운 그대로의 삶”을 주장하는 양생주(養生主)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정욕과천(情慾寡淺)은 “인간의 감정과 욕망은 태어날 때는 크지 않았지만, 사회에 살면서 인위적으로 커지는 것이므로 본래의 모습을 따라 이를 줄이고 억제하자”는 생각이다.
이와 같은 사상은 서양 계몽시대에 프랑스 철학자 루소에 의하여 서양에서 크게 성행한다.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고상한 인성이 문명 때문에 타락한다는 루소의 인성론이 서양에 크게 퍼지게 된다. 이런 차원에서 일부 서양 학자들은 루소의 사상이 노자의 도 사상과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견모불욕(見侮不辱)은 “남에게 모욕을 당해도 그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상으로, 이러한 윤리를 통해 불필요한 경쟁이나 싸움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궁극적으로 나와 남의 대립이 아니라 나와 남은 결국 서로 보완할 수 있다는 사유를 근거로 삼고 있다. 서양의 선악론이 아니라 동양의 음양론에 입각한 사상이다. 금공침병(禁攻寢兵) 사상은 당시 이미 수백 년을 계속하여온 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즉 “모든 나라는 다른 나라에 대하여 군사 공격을 금하고 무기를 없앰”으로 써 천하를 전쟁으로부터 구하자는 사상이다.”
4) 변화에 숨겨진 세(勢): 동양의 바둑 vs 서양의 체스
서양의 존재론이 부분을 보고 전체를 파악하고자 하는 철학적 성향을 만들어내는 반면 동양의 변화론은 전체를 볼 수 있어야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는 성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동양에서는 인간사를 분석할 때 전체를 보는 방법으로 변화에 숨겨진 세의 개념을 발전시키게 된다. 세가 변화론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 사유에서 차지하는 핵심적 역할은 서양에서 이해하기가 힘들다. 왜냐 하면 세의 철학은 존재론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 사유에서는 활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서양 사상가들도 동양의 세(勢)라는 철학적 사유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서양 단어로는 잠재력, 가능성, 숨겨진 힘 등을 의미하는 퍼텐셜(potential)이 가장 유사한 표현을 하고 있다. 서양 단어에도 트랜드(trend) 같은 단어가 경향이나 흐름을 나타내지만 이것은 이미 존재하는 알고 있는 것에 소속된 표현이고, 세처럼 숨겨져 앞으로 나타날 힘에 대한 표현은 아니다. 미중관계 개선을 주도한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중국과 동양문명에 대한 남다른 이해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중국지도자들이 전략적 상황을 읽는 방법과 목표를 설정하는 데서 서양과 다른 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변화에 숨겨진 세를 따르는 동양과 존재론에서 나온 즉각적 행동을 따르는 서양, 두 세계의 철학적 사유가 근원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음을 분석하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전략적 판도를 하나의 전체적 흐름으로 본다: 선악, 원근, 강약, 그리고 과거와 현재는 모두 연속적이다. 서양의 역사관은 역사적 흐름을 악이나 후퇴에 대한 완전한 승리의 과정으로 다루지만, 중국의 전통적인 역사관은 다르다…. 중국은 역사의 흐름에서 최선의 선택을 조화에서 찾는다. 전략과 정치력의 발휘는 상대방과의 투쟁적 공존을 이루는데 집중되어 있다. 목표는 상대방을 약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잠재적 세(勢) 또는 전략적 위치를 강화하는 데 있다. 41
세의 중요성은 중국 전국시대에 신도(愼到)에 의하여 강조되었다. 그는 “용(龍)도 구름(勢)를 잃으면 지렁이와 같아진다” 라고 주장하였다. 인간사회에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숨겨진 전략적 흐름인 세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예를 들면 징기스칸은 13세기 몽고에서 태어나서 몽고가 가진 숨겨진 세를 발견하고 이를 규합하여 세계를 지배하는 용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21세기 몽고에서 태어났다면 무엇을 하던 세계적인 용이 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13세기 기마부대와 활의 숨겨진 힘을 가진 몽고의 세가 21세기에는 없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에서도 제5장 전체가 숨겨진 전략 세에 관한 설명이다. 세를 파악하고 이용하면 백전불태가 된다. 손자는 전쟁에서 세는 전략과 전술로 이루어지는데 전략을 잘 세우는 것으로 전쟁에 임하며, 전술을 잘 사용하는 것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전쟁을 잘하는 장군은 군사 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세를 활용한다”. (손자병법 5-5) 그리고 전략과 전술은 상호 의존적이며 서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둘 사이의 조합에서 세가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손자는 전략과 전술 간의 조합은 무궁무진하며 누구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세의 전쟁론을 펼친다:
해와 달과 같이 움직여라. 없어진 것 같지만 다시 시작한다.
사계절과 같이 움직여라. 죽은 것 같지만 다시 시작한다. (손자병법 5-2)
세를 중시하는 동양의 철학은 동서양이 대표하는 바둑과 체스 게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특히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서양은 승리를 목표로 하고, 동양은 세를 넓히고 크게 하는데 집중하고 있는데 전략적 차이가 있다. 승리는 상대적 승리 즉 세를 크게하는 자에게 결국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것이지, 직접 승리를 목표로 하고 계속 싸우는 자가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동양 철학을 바둑의 세가 나타내고 있다:
체스에서는 목적이 분명하다. 그 목적은 압도적인 승리다. 체스의 결과는 완전한 승리가 아니면 패배다. 체스 게임은 체스 판에서 벌어지는 계속되는 정면 충돌로 이어진다. 바둑은 상대적인 승리를 목표로 한다; 바둑 게임은 바둑판 전체에서 벌어지지만, 목적은 우리편의 선택 범위를 넓히고 상대편의 선택 범위를 줄이자는 데 있다. 바둑의 목표는 단판의 승리가 아니라 전략적 우위를 계속 점하는데 있다. 42
이러한 접근 방법은 21세기 지정학에서 가장 중요한 미중패권 경쟁에서 미국과 중국이 보이는 전략-전술의 차이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21세기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최대 위협으로 확정하고 중국의 굴기를 방해하기 위한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 강화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 등으로 중국에 대하여 계속 승리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경쟁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당장의 승리 보다는 중국의 경제력 강화와 내부 결속에 집중하면서 세 즉 전략적 위치를 강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미중패권은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전략적 위치를 강화하는 경쟁 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승자가 결정된다. 미중간의 경쟁은 역사속에서 여러 번 일어났던 서양 세력 간의 직접적 충돌로 결정되지 않는다. 서양 학자들 사이에 유행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미중 경쟁은 체스 게임 처럼 적의 궤멸이 아니라 바둑 게임 처럼 세의 확장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결과가 저절로 결정되는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런 동서양의 다른 태도는 국가간의 전쟁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개인간의 상황을 활용하는 방법에서도 나타난다. 변화론에 의지하는 동양문명은 존재론에 의지하는 서양문명과 인생사에 대한 다른 철학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현실은 존재론에 의하여 미리 정해진 목적이나 결과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만드는 새로운 상황 즉 세의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과 중국인은 효능이라는 것을 달성하려고 할 때 다른 철학을 따르게 된다. 그리스인은 행동을 따르고, 중국인은 변화를 따르게 된다. 둘 사이에 관계가 전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인은 인간의 행동이라는 모델에 따라오는 자연적 변화를 생각하고, 중국인은 자연적 변화에 따라오는 인간의 효능성을 생각한다. 전쟁에서 장군은 식물이 자라는 과정이나 강물이 흘러가는 과정과 같이 전략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정하고자 한다… 중국인은 행동이 가져오는 우월성 보다는 변화가 가져오는 내재적인 우월성을 믿고 있다. 43
서양의 법률과 제도 그리고 모델을 존중하는 습관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서양은 神이 창조한 자연과 인간에는 항상 목적이 있다는 목적론을 가지고 자연과 인간을 관찰하는 습관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법률로 이를 규정하고 모델과 제도를 만들어 남에게 퍼트리고자 한다. 이러한 경향은 목적론에 충실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헤겔에 이르기까지 또 계시종교의 기원에서 부터 다윈에 이르기까지 서양 사상가들이 충실히 지켜온 철학이다.
서양의 목적론은 진리에 입각하고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한번 세워진 목적에 대한 의문이나 두번째 의견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서양이 발전시킨 이론이나 여기에 따른 실천은 세상에서 모든 상황에 적응한다고 보기 때문에 절대성을 가지게 된다. 세계의 모든 다른 나라가 따라야 한다는 입장으로 남에게 강요하게 된다.44 반면 동양 문명은 변화론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방안을 추구하거나 변화하자는 입장에 대하여 열려 있게 된다. 결국 동양의 인간사는 법, 세, 술이라는 방법을 창안하였는데, 우주론에 있어서 변화론이라는 철학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서양의 법률, 모델이나 제도는 목적론이라는 서양의 우주론에 근거하게 된다. 몰론 목적론은 창조에서 오는 존재론이 그 근거가 된다.
율법에 의지하는 서양 문명은 목적론과 얽히면서 제도와 모델을 만드는 습성을 유지한다. 목적을 파악하게 되면 제도의 도출에 집중하게 된다. 서양인들은 제도가 변하지 않는 존재, 그리고 거기에 잠재되어 있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효율을 높인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제도를 모델로 만들어 자신은 물론 세상에 전파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모델이나 제도를 정하고 그 안에서 법률과 관련된 부분에 집중하게 된다. 즉 법률과 관련된 부분을 정리하면 전체가 정리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반면 동양인은 변화론에 의존한다. 그런데 변화는 항상 유에서 무로, 즉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상황에 대하여 어려가지 인식을 하게 된다. 사물 간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하고,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서양인은 이 보다 훨씬 간단한 결정론 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파악한다. 그들은 전체의 부분으로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사안에 그대로 집중한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상황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개별 사안들이 제도나 모델에 따른 법칙을 존중한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45
그러므로 서양인들은 그들이 만든 제도나 모델은 세계의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모두 통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신이 만든 인간이므로 모두에게 통용된다는 보편성이 보장되는 것이고, 신이 인도하여 만들어진 제도나 모델은 마찬가지 이유로 보편성이 보장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편적 효용성에는 그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제국주의적인 의도와 함께, 인간을 모두 잘 살게 해보자는 종교적 선의의 입장이 혼용되어 역사속에서 작용하여 왔음을 보여준다. 키신저는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를 미국과 중국을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특이성은 자신의 가치에 대하여 종교적 전파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세계 곳곳에 퍼트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반면 중국의 특이성은 문화적이다. 중국은 다른나라를 자신과 같이 개종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중국은 자신의 제도가 중국 외의 지역에서도 적용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46
동양식 국제관계에서는 서양식 존재론에 의한 보편성을 주장하지 않고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한다. 서양은 서양의 법률, 제도, 모델의 보편성을 주장하고 서양 방식을 퍼트리기 위하여 노력하게 된다:
중국 황제는 이웃 나라와 반드시 적대적인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다. 중국도 미국과 같이 자신이 특별한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세계로 퍼트리려는 보편성을 주장하려는 의도는 갖고 있지 않았다.47
서양은 그리스-로마 시대 이후 계속된 제국주의를 펴왔으므로 주변국과의 관계가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국은 강제적으로 강요하는 입장이 아니라 필요하면 가져가라는 자율적인 입장을 취했다.
중국은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가치를 다른 나라에 퍼트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와서 가져가라는 태도를 취했다. 주변 국가들은 중국과 접촉하여 문명을 배우고 가라는 자세였고, 이를 위해서는 주변 국가들은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해야 했다. 48
그러나 21세기 서양의 세계정복이 끝나고 지구가 하나가 되면서, 서양식 문명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들어내게 되었다. 서양은 세계경제 발전 전략을 세우고, 세계의 모든 나라가 서양식 모델을 따라 경제발전을 해 나갈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제도나 모델은 문명이 뒷받침되어야 이를 근거로 나올 수 있는 것이고, 문명의 뒷받침이 없는 곳에 제도나 모델을 옮겨 심어서는 결실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이 들어 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제도나 모델을 가지고는 경제발전을 이룰 수가 없다. 왜냐하면 문화가 바로 제도나 모델을 결정한다는 것을 보며 주기 때문이다.
문화가 어머니고, 제도는 그 자식들이다.49
지구 전체를 보면, 서양을 따라잡은 나라는 극 소수이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경제발전이나 민주주의 면에서 지난 반세기 이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세계를 경제발전으로 이끌 수 있다는 꿈이 좌절과 패배주의로 뒤바뀌었음을 목도하게 되었다. 50
바스코다가마가 개척한 해로를 따라 실제로 동양에 와서 오래 살게 된 예수회 소속 신부인 마테오 리치 (Matteo Ricci, 1552-1610)는 서양에 보낸 보고서에서 바로 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황제도 신민도 아무도 이웃을 침략하거나 정복하려는 전쟁 계획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것에 아주 만족하고 있고 그래서 이웃나라 정복의 욕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점에서 중국인들은 유럽 사람들과는 아주 다르다. 51
동양의 수천년 된 철학체계와 전통은 서양 문명이 동양에 퍼져도 이에 따라 쉽게 변하지 않았다. 서양의 제도와 경험을 수입하면서 이를 동양의 사유체계에 따라 자신에게 맞추어 나가는 변화의 방법을 취하였다.
지난 반 세기 동안 동아시아의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유럽, 특히 서양의 경험을 참고했다. 그러나 서양의 것을 그대로 베끼기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들의 현대화는 아주 다른 형태를 취했다. 그들 자신의 역사와 문화에서 영향을 받아 자신들의 제도, 관습, 가치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나갔다. 52
민족국가를 오랜 시간 동안 관리하여 온 나라에서 서양식 삼권분립 제도를 그대로 수입하여 활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다당제도와 관련하여도 동아시아에서 서양식 다당제를 그대로 시행하여 정권교체를 하고 있는 나라는 소수다. 한국과 대만이 해당된다. 일본과 싱가포르를 포함하여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정권교체를 하는 서양식 다당제를 따르기 보다는 한가지 당에서 분파에 의하여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공산당 내부에서 “지도자 교체”가 이루어지는 면과 일본이나 싱가포르에서 한가지 당에서 분파에 이하여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는 면에서 유사한 면이 있다.
지도자를 평화적 방법으로 교체하는 제도는 동양이 서양에서 배워온 것이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은 다른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서양은 정당이 바뀌면서 이데올로기 적인 교체가 이루어 진다. 동양에서는 한국과 대만을 제외하고는 지도자의 교체로 인하여 이데올로기 적인 전환이라는 “혼란”을 피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동아시아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서양과 다른 형태의 정치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양식 제도나 모델을 참고하지만 동양식의 전통과 역사, 문화를 따르기 때문이다. 제도나 모델은 수단이며, 이것들이 목적을 미리 결정하는 예정된 핵심적 부분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알 수 있다는 서양의 존재론과 다른 변화론의 사유체계를 동양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은 전체를 알지 못하면 부분만 가지고는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고 본다. 철학적으로 보면 동양은 항상 변화해 나가면서 알 수 없는 미래의 상황을 추론해 나가는 귀납적 사유를 따르고 있다. 변화하는 세(勢)의 힘을 파악하여 하고 이것이 결과에 비치는 영향을 중요시하자는 자세가 된다. 제도나 모델을 중요시하는 서양의 존재론에 입각한 연역적 사유체계와 다른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