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ume 2 인간본성: 본능-이성 이원론 vs 본능-이성 합일론 · Chapter 1

인간본성: 본능과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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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성(理性)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서양 문명은 神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창조론을 수천년 간 믿어왔다. 그런 창조론이 19세기 다윈의 진화론에 의하여 결정적으로 도전을 받게 된다. 그 이후 지금까지 화석학과 지질학의 뒷받침을 받아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논쟁에서 진화론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신념으로 서가 아니라 과학으로서의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논쟁은 끝났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공통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대략 다음과 같이 출현, 진화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인류 진화의 역사는 우리의 짧은 일생으로 상상하기가 쉽지 않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엄격히 말하면 45억년 지구의 역사만 큼이나 오래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재구성이론(theory of recapitulation)이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은 10개월의 태아 시절에 자신의 기나긴 진화과정을 빠른 속도로 다시 보여주고 있다. 태아의 변화는 단세포에서 다세포 생물로, 그로부터 젤리형태의 생물, 어류,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로의 이행과정과 흡사하다. 태아의 발달은 인간의 진화 과정을 빠른 속도로 보여주는 현상으로, 생물학적으로는 재구성이론이라 불리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이론은 태아의 발달 과정에서 인간의 진화 과정을 따라가며, 지구상의 생물 진화의 역사를 재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지금은 일부분만이 정확하다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인간의 진화 과정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해준다.

약 5억년 전에는 지구상은 어류의 전성기(Age of Fishes)였다. 그 어류의 지느러미는 5개의 뼈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체액은 바닷물과 비슷한 염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의 손의 마디가 5개이며, 혈액의 염도가 바닷물과 비슷한 것은 어류시절부터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이다. 우리의 손은 5개 마디, 양손을 합치면 모두 10개 마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물고기 지느러미 뼈가 6개였다면, 우리의 손이나 발의 마디는 각각 6개씩이 되고, 양손을 합치면 모두 12개가 된다. 그러면 현행 10진법 대신 12진법이 유행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류의 후손인 최초의 육상동물이 나타난 것은 약 3억 5천만년 전이다. 2억년 전부터 7천만년 전까지는 공룡이 지구의 왕자로 군림하였다(Age of Dinosaurs). 이 파충류로부터 우리는 우리 뇌에서 숨쉬기, 수면과 식욕 등 본능을 관장하는 R-콤플렉스(Reptilian complex)등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파충류는 감정이나 욕망 표현 기능이 없다. 약 7천만년 전 지구의 왕자로 군림하던 파충류의 왕자 격인 공룡들이 갑자기 멸종하여 사라진 후 포유류의 전성시대(Age of Mammals)가 시작되었다.

파충류이후 번성한 초기 포유류로부터 우리는 감정과 욕망을 관장하는 림빅시스템(Limbic System)을 물려받았다. 림빅시스템은 인간의 것은 다른 포유류와 비교하여 거의 차이가 없다. 림빅시스템은 우리의 욕망을 관장하는 곳이다. 본능과 욕망 면에서는 인간과 동물 간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생쥐처럼 생긴 조그만 초기 포유류들은 약 1억년 동안이나 육식 파충류 들로부터 쫓기며 숲의 바닥을 기며 식물의 씨앗이나 곤충들로 연명하며 살아남았다. 그러나 파충류 전성시대의 종식과 함께 갑작스러운 지각의 변동, 기후의 대변화는 작은 포유류들에게 도전과 함께 진화의 기회를 가져왔다. 이들의 일부는 지상생활을 버리고 나무 위로 올라가 수상(樹上) 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원숭이류, 유인원, 그리고 드디어 인류의 진화의 대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처럼 7천만년 전에 일단 나무 위로 올라감으로써 진화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포유류는, 2천만년 전 사바나(savanna)가 생성되면서 또 한 번 결정적 진화의 계기를 맞게 되었다. 수천만 년 전 우리의 먼 조상은 탁 트인 사바나와 수풀의 경계에서 도전과 기회에 직면하여 망설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선조가 수상 생활에 따르는 절박한 위험을 극복하였듯이 전대미문의 사바나 생활을 향하여 용감히 첫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수많은 노력과 인내, 각고 끝에 마침내 사바나 위에 두 발로 엉거주춤 설 수 있는 영장류가 탄생한 것이다. 고생물학자들은 이들을 라마피테쿠스(Ramapithecus)라고 명명하였다. 오늘날 우리를 두 발로 서게 하고 두 손을 해방시켜준 조상인 것이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해방된 두 손으로 초보적이나 지극히 중요한 도구들을 만들어 손재간을 부릴 수 있었고(Homo habilis), 더욱 더 직립(Homo erectus)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진화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것으로 추측된다. 1-2 백만년 전 직립원인(Homo erectus)은 전성기를 맞았다. 이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지협을 거쳐서 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북경인(Peking man, 60만년 전), 자바인(Java man, 60만년 전), 하이델베르크인(Heidelberg man, 50만년 전) 등은 모두 직립원인들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것은 30만년 전에서 20만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출현지점에 대하여는 아직 정설이 없다. 아프리카 동부에서 20만년쯤 전에 모든 현생인류의 조상이 되는 최초의 이브(Eve)가 출현하였다. 이들은 선조 직립원인처럼 지구상 각 지점으로 이동하였을 것이라는 설도 있고, 직립원인에 내재해 있는 이미 짜맞춰진 진화적 요인에 따라 여러 곳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호모 사피엔스로 발전하였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건 호모 사피엔스는 궁극적으로 전 세계로 퍼져 직립원인 (Homo erectus)를 대체하게 된다.

호모 사피엔스의 현생인류(現生人類)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로의 이행은 약 5만년 전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亞種; sub-species)으로서 다른 아종 들도 있다. 네안데르탈인(Homo sapiens neanderthalensis), 솔로인(Solo man), 로디지아인(Rhodesia man) 들이 있다. 그러나 이 아종 들은 진화학적 사촌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처럼 번창하지 못하고 멸종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출현한 현생 인류의 특징은 무엇인가? 호모사피엔스는 두 손을 계속 쓰면서 두뇌가 커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BC 5만 년쯤 급격히 머리가 커지는 진화를 겪게 되었다. 현생인류가 된 것이다. 그 이후 머리의 크기는 변하지 않고 있다. 진화는 연속적으로 조금씩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급격히 일어나고, 한번 일어난 진화는 상당기간 동안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결국 호모사피엔스는 이세상에서 1.5 리터 내지 2리터의 거대한 뇌, 즉 네오코르텍스(neocortex)를 가지고 수만 년 동안 이세상에서 살고 있다. 결국 인간은 본능의 R-콤플렉스, 감정의 림빅시스템, 정신능력의 네오코르텍스의 뇌를 가지고 있다.

The Reptilian, Mamalian and Visual Brain | Brain anatomy, Reptilian brain, Limbic  system
본능의 R-콤플렉스, 감정의 림빅시스템, 정신능력의 네오코르텍스로 구성된 인간의 두뇌

인간은 거대한 뇌에서 드디어 “생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뇌에서 이 부분을 네오코르텍스라고 부른다. 현생인류는 소위 뉴 브레인 (New Brain)에 해당하는 네오코르텍스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인류의 사고, 이것이 인류를 다른 동물과 다른 존재로 만들었다. 이에 대비하여 렙틸리안 브레인(R-complex)과 림빅시스템 (Limbic system)을 합쳐서 올드 브레인(Old Brain)이라고 부른다. 뉴 브레인이 인간의 특성이다. 그러나 올드 브레인이 인간의 아주 중요한 일부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흔히 여기서 사람들은 인식문제에 있어서 커다란 착오를 범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만이 뉴 브레인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이 만든 문명은 뉴 브레인에서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부분적이고 부정확한 판단이다. 올드 브레인의 역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올바른 판단은 “뉴 브레인(이성)이 올드 브레인(본능과 감정)과 함께” 인간의 역사와 문명을 만들어 낸다고 보아야 옳다. 이 책에서는 본능과 감정을 합한 올드 브레인을 본능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본능과 감정을 합하여 하나로 보는데 익숙해져 있고, 이것을 본능으로 표현하고 이성과 구분하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본능과 이성으로 인간본성을 분석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현생인류가 BC 5만년경 출현하고 4만년동안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왔다. BC 1만년경에는 드디어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인류는 집단거주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드디어 집중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BC 3천년경에는 “문자”가 만들어지면서 동서양이 모두 생각들을 조직적으로 정리하게 된다. BC 1천년경 에는 이런 생각들이 말이 아니라 “문서”로 정리되어 나오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드러난 동서양 문명은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다른 길로 들어선 최대의 지표는 인성론에서의 차이이다. 이를 기본으로 하여 동서양은 다른 문명을 만들게 된다. 즉 인간의 정신능력인 이성을 어떻게 동서양 문명차원에서 어떻게 소화해 내었는지가 관건이다.

2) 인간본성은 본능과 이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에 항상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여 왔다.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자 노력하여 왔다. 그리스 시대에도 플라톤은 인간에 대하여 “몸에 털이 없는 두 발 달린 짐승” 이라고 정의하였다. 항상 플라톤의 현학적 태도를 비웃던 디오게네스 (Diogenes)가 행동으로 옮겼다. 디오게데스는 닭을 잡아 털을 모두 뽑아버린 후, 플라톤과 제자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내던지며 “네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여기 있다” 고 외쳤다. 이에 플라톤은 황황히 인간에 대한 정의를 고쳤다. 그는 인간은 “몸에 털이 없고, 두 발을 가진, 발톱이 넓고 동그란 짐승” 이라고 수정하였다.

이 보다 한 걸음 더 나간 시도도 있었다. 플라톤으로부터 거의 2천년 후에 일어난 일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는 뇌에 있는 솔방울처럼 생긴 송과선(Pineal gland)이 바로 神이 인간에게 준 정신을 별도로 간직하고 있는 조직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로서 데카르트는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에서 유행하던 송과선이 인간의 영혼을 대표한다는 오랜 생각을 해부학적 뒷받침을 받아 구체화하였다. 그리고 영혼이나 이성 또는 정신이 인간을 대표한다는 소위 합리주의를 내세워 근세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물론 현대 의학은 데카르트의 송과선이 바로 이성이라는 주장이 옳지 못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송과선은 수면과 관련된 멜라토닌을 배출하는 역할 등을 하는 내분비선일 뿐이다. 현대 의학은 데카르트 보다는 스피노자에 힘을 실어준다. 이성과 본능은 분리될 수 없고 이성과 본능이 합쳐서 인간을 대표한다고 본다. 이성과 본능을 2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동양철학과 일맥상통한다.

플라톤과 데카르트는 인간에 대하여 또 뇌의 구조에 대하여 그릇된 정의를 가지게 되었지만, 인간의 신체적 구조에서 인간의 정의를 내려보려고 한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인간본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절대적인 중요 한데, 인간의 본성을 신체구조에서부터 추측해보려는 시도가 없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서양에서는 종교적 영향 때문에 중세가 끝날 때 까지는 그러한 시도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에 의하여 인간의 신체, 특히 대뇌구조와 기능이 비밀이 많이 밝혀진 오늘날에도 뇌의 구조에서 인간 본성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시도는 별로 없다. 특히 서양의 경우 지난 수 천년 동안 누적되어온 “정신”에 집중한 인간본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수정하고 올바른 이해를 위한 움직임이 없다.

철학을 신학이나 형이상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과학과 결합시켜야 한다. 신학이나 형이상학은 도그마로부터 해방되기 어렵다. 그러나 과학은 “자기수정적”이기 때문에 철학이 의지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만드는 것은 두뇌다. 두뇌의 대부분이 뉴 브레인이며 전체 뇌의 ¾ 이상을 차지한다. 뉴 브레인은 인간이 수천년 문화역사를 통하여 영혼, 정신, 이성, 마음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기능을 하고 있는 곳이다. 현대의학에서는 좀더 정확한 “신경계의 고도기능”이라는 표현으로 집합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다.

그러나 뉴 브레인이 결코 인간을 대표할 수는 없다. 올드 브레인이 있기 때문이다. 올드 브레인은 R-콤플렉스와 림빅시스템을 총칭한다. 파충류로부터 우리는 우리 뇌에서 숨쉬기, 수면과 식욕 등 자동조절기능을 관장하는 R-콤플렉스 등 본능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파충류는 감정이나 욕망 표현 기능이 없다. 약 7천만년 전 포유류의 전성시대가 시작되었다. 파충류이후 번성한 초기 포유류로부터 우리는 감정과 욕망, 그 표현을 관장하는 림빅시스템을 물려받았다. 인간의 감정을 다스리는 림빅시스템은 인간이 포유류에게서 이것을 물려 받은 이후 거의 변화가 없다는데 유의해야 한다:

림빅시스템의 실제 크기는 포유류가 진화하는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79

그런데 서양에서는 고대로부터 근세까지 3천년 이상 림빅시스템의 한 가운데 있는 “송과선- Pineal gland”이 神이 인간에만 주는 “영혼”, ”정신”, “이성”의 실체로 인식하고 있었다. 왜 그런 인식이 생겼을까? 인간의 육체 대부분이 양쪽으로 나뉘어 두개로 존재하는데 송과선 만은 하나 밖에 없다. 또 송과선 하나 만은 뇌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이성의 실체적 존재라고 부른 송과선은 뉴 브레인이 아니라 올드 브레인에 속한다. 즉 이성이 아니라 본능, 감정을 관장하는 부분이다. 서양문명이 뇌에서 본능에 속한 부분을 이성이라고 숭배하면서 형이상학에 싸여 수천년을 보내고 결국 이데올로기로 몰고가서 인간의 본성을 일탈하게 된 것은 돌이켜보면 기가 막힌 아이러니다. 데카르트 등 서양의 합리론자들이 이성의 실질적 본체 라고 주장한 송과선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

송과선은 멜라토닌을 분비하는 곳이다. 많은 동물들에게서 계절적인 생식조절기능을 하는 곳이다. 인간에게서는 멜라토닌은 생리적으로 24시간 주기를 관장하는 역할을 한다.80 송과선은 몸의 중간에 있는 하나만 있는 기관이다…. 송과선은 소나무 열매 같이 생겨서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는 단 하나만의 송과선을 가지고 있고 두뇌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한 동안 영혼이 있는 자리라고 생각되었다. 81

동양문명에서는 인간의 정신과 본능은 상보적으로 합쳐 있는 것이고 본다. 정신과 본능을 2분법적으로 별도로 취급하지 않는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을 가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인간은 심신(心身), 心(마음)과 身(몸)으로 파악되었다. 그리고 心과 身은 분열되거나 갈등관계로 인식되지 않는다. 道의 문명에서는 심(心)이 서양처럼 순수한 정신만을 표상하는 뇌(腦)로 대체된 적이 없다. 그래서 인간에게 정신을 준 神에 대한 연구, 신학이 존재할 필요성이 없었다. 또한 육체에서, 또는 자연에서 분리된 정신을 연구하는 형이상학도 발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형이상학에서 발전한 이데올로기도 피하게 된다. 그 대신 윤리를 기반으로 한 정치윤리와 정치경제에 집중하게 된다.

이성(뉴 브레인)과 본능(올드 브레인)의 두 신경조직은 쉽게 구분될 수 있는 별도의 것이기는 하되, 둘 사이에는 뗄 수 없는 신경세포의 연결을 가지고 있다. “대뇌화”(Encephalization)라고 부르는 이 연결 현상이다. 이는 정신과 본능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결정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해부학적으로 보면 뉴 브레인과 림빅시스템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뉴 브레인은 마치 기수가 고삐 없이 말 위에 앉아 있듯이, 림빅시스템을 타고 앉아 있다. 실제로 고삐는 거의 없다. 뉴 브레인의 전엽(前葉)과 인근 림빅시스템이 신경세포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82

뉴 브레인의 전엽이 림빅시스템 즉 올드 브레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 이 연결 신경세포가 바로 중요한 “대뇌화”의 물적 증거인 것이다. 그리고 뉴 브레인의 전엽은 특히 분석·종합·판단, 곧 이성의 역할을 관장하는 것이다. 뉴 브레인의 전엽과 올드 브레인, 곧 이성과 감정, 이성과 본능이 물리적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러셀의 표현을 빌리면 올드 브레인은 “행동의 원천”이고 뉴 브레인은 “조정자”다. 이것은 올드 브레인과 뉴 브레인의 해부학적 구조 와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사람이 말을 타고 달릴 때 행동의 원천은 말이고 사람은 그 조정자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러한 연결의 결과는 본능과 감정의 일부를 뉴 브레인이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연결이나 관계가 그렇듯이 대뇌화가 일방적인 한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대뇌화는 쌍방통행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본능 가운데서 특히 대뇌화가 크게 된 것은 생식본능(生殖本能)임이 임상실험으로 밝혀졌다: 인간에게서 성 기능은 광범위하게 대뇌화 되고 있고, 사회적 정신적 요소에 의하여 조정 받고 있다.83 이런 사실은 왜 인간이 노래, 소설, 영화 등에서 그렇게 “사랑”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이성이 감정이나 본능을 일부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감정이나 본능 또한 이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의미하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뇌화는 결국 양면의 날을 가진 칼이다:

기능적 측면에서 볼 때, 뉴 브레인의 활동은 정서적 행위를 변형시킨다. 그리고 그 역도 성립된다 84

이러한 복잡한 구조를 가진 인간은 동서양 문명에서 과연 어떤 인간본성을 가진 것으로 파악되었는가? 특히 이성과 본능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였는지가 관건이다. 동서양문명은 이를 기점으로 다른 문명으로 갈리게 된다. 되풀이하지만 인간본성이 하부구조라면 모든 철학은 그 상부구조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인간본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 위에 세워진 사상이나 철학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반대로 올바른 인간본성 위에 세워진 사상이나 철학은 살아남는다.

하이에크(1899-1992)는 공산주의가 실패한 원인은 인간본성에 위배되는 철학에 입각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이러한 판단은 공산주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역사에 있어서 실패한 모든 철학과 사상은 인간본성을 위배한 철학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3) 서양의 본능-이성 이원론 vs 동양의 본능-이성 합일론

인류는 그 진화의 초기에 전대미문의 정신기능에 대한 놀라움을 가지게 된다. 죽은 자가 꿈에 나타나며, 신비로운 계시를 받기도 한다. 지구상 생물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정신현상이다. 정신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대표적인 것이 육신과 정신을 이등분하는 것이다: 육체-정신, 정열- 이성, 생리-심리, 감성-이지, 본능-지성 등등이 그것이다. 정신과 육신, 이 둘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 즉 인성론에서 동서양의 문명의 원천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서양의 이원대립론, 즉 이원론(二元論)과 동양의 이원보완론, 즉 합일론(合一論)의 차이다.

서양문명에서는 정신이 동물에는 없는 인간만이 가진 별도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정신을 본능과 구분하여 특별한 존재로 취급한다. 서양문명을 살펴보면 정신의 존재를 솔방울과 영혼의 눈으로 표현한다. 그리스-로마 문명에서 이러한 기초가 쌓이기 시작하였으며, 정신상태와 종교가 결합하면서 수천년의 서양 문명 철학체계의 핵심이 된다. 정신이 神과 결합하면서 육체는 물질로 취급되고 영육의 구분이 분명해진다. 자연을 물질로 간주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대립적 구분(dichotomy)이 神과 자연의 대립적 구분과 함께 일어난다.

반면 동양에서는 정신현상을 인간이 가진 하나의 기능으로 파악,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하고 자연의 일부로 보는 태도를 취한다. 종교와 결부되는 경향도 없다. 동양문명에서는 정신은 신체와 조화를 이루게 되고, 인간과 자연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보완성(complementarity)을 강조하는 음양론이라는 동양문명의 본질이 형성된다. 동양문명에서는 정신이 어떻게 취급되었는가? 동양에서는 정신과 육체와의 관계를 심신(心身) 이라고 표현한다. 동양에서 정신은 심(心)이다. 심(心)은 심장을 가리킨다. 서양은 정신의 근거로 뇌(腦)를 지명하였다. 뇌(腦)라는 것을 알았는데도 왜 동양에서는 육체에 대한 대비를 할 대 뇌(腦) 대신 심(心)이라는 표현 사용했는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양의 동양학 전문가 들은 이점에 대해 커다란 의문점을 갖게 된다:

왜 중국에서는 뇌(腦) 라는 표현을 피하고 심장을 가르치는 심(心)을 썼는지 서양문명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85

심신에서 身은 물리적인 인간의 구조, 즉 팔에 있는 근육이라든지 이런 것을 가리키는 것일 뿐이다. 결국 심신에서 심(心)은 인간의 종합적인 표현이지 정신을 대표하는 표현이 아니다. 그러므로 동양의 심신에서 심(心)은 육체 보다 정신과 육체를 합해서 나오는 직관(intuition)에 가깝다. 문제가 복잡할 때 우리는 직관을 따르자 고 한다. 또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자” (Follow your heart)라고도 한다. 여기서 서양이 표현하는 가슴이 바로 동양의 심(心)에 가장 가까운 표현을 하고 있다. 여기서 심장이나 직관은 정신과 육체의 종합적 또는 보완적 판단을 의미한다.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정신 만의 판단이 아니라 본능에도 의지하는, 이성과 본능을 합친 몸 전체의 판단에 의지하자는 뜻이다. 이 경우 인간은 그 합일성을 유지하게 된다. 서양식 대립적 분열이 아닌 동양의 음양적 합일이 이성과 본능의 관계다. 그러므로 동양 문명에서는 몸과 분리되어 별도로 존재하는 정신에 집중하는 형이상학이 없다.

서양 문명은 본능과 이성을 대립적이고 이원적인 둘로 나누어 보는 인성론에 입각한다. 본능과 이성은 따로이고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성은 神이 인간에게만 특별히 준 것이므로 본능과 대립되어 존재한다. 동양은 분리가 아니라 합일론을 주장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보완론에 입각한 동양의 음양론은 서양의 철학에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음양론을 따르면 본능과 이성은 하나이면서 둘이라는 개념이다. 동서양 간의 본능-이성 간의 관계에 대한 차이는 인성론 면에서 아주 중요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인성론의 차이는 동서양 문명의 기초를 달리 놓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서양에서 동양의 음양적인 인성론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는, 인간이라는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총체를 서양에서는 둘로 나누어서 보는 철학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리론에 입각한 구분과 설명은 필연적으로 인간이라는 한 전체를 한 측면에서만 부각하여 설명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왜냐하면 해부학적으로 뉴 브레인이 올드 브레인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본능과 이성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입증해주기 때문이다.

뉴 브레인과 올드 브레인이 하나를 이루는 대뇌의 두 부분이듯이, 정신과 육체도 하나를 이루는 양면이 아닐 수 없다. 스피노자가 이미 17세기에 영육합일체에 대하여 그의 윤리학에서 설명하고 있다. 데카르트의 이성을 중심으로 한 합리론에 대하여 반대하는 의견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신과 육체는 때로는 생각이라는 속성으로, 때로는 실체라는 속성으로 파악되는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 86

바이츠제커(Weizsäcker)도 유사하게 영혼과 육체의 합일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나는 육체와 영혼이 두 가지의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실체라고 주장하고 싶다. 이 육체와 영혼이 자신 자신을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알고 있는 인간인 것이다. 87

이러한 견해는 20세기 과학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정신의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최근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정신과 육체라는 표현에 내포되어 있는 이분법은 생물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88

정신과 육체는 생명 자체의 불가분의 동등한 표현이다. 영육적 실존체의 두 가지 측면일 뿐이다.89

서양에서 정신을 중심으로 한 형이상학이 발달한 것처럼 동양 철학도 정신과 육체에 관한 형이상학적 취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송나라 시대에 동양사상가들이 관심을 기울인 이기론의 출현이다. 동양문명은 정치윤리와 정치경제에 집중하고 신학이나 형이상학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불교가 동양에 전승되면서 인도의 형이상학적 취향이 동양문명에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이기론이 발생한 것이다. 이기론은 결국 현재 동양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이 본능을 배척하고 이성에 압도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과 비교하기 위하여 이기론에 담긴 본능과 이성의 상보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본능과 이성의 관계에 대하여 서양문명은 대립성, 동양문명은 상보성을 보이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동양의 이기론에 의하면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정신현상은 이(理)로, 밑받침이 되는 에너지의 원천은 기(氣)로 표시된다. 이(理)는 사단(四端), 기(氣)는 칠정(七情)에서 나오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사단은 인의예지(仁義禮智), 즉 이성의 역할을 의미한다. 칠정은 기쁨·노함·슬픔·두려움·사랑·증오·욕망(喜怒哀懼愛惡慾)을 말한다. 90 곧 감정과 본능이다. 올드 브레인은 곧 기(氣)이고 뉴 브레인은 곧 이(理)다. 이율곡(李栗谷)은 생각·이성을 이(理)로, 감정·본능을 기(氣)로 정의한 후 이(理)와 기(氣)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서양 의학이 묘사한 상호 해부학적 관계와의 유사성은 놀랄 만하다:

이(理)라는 것은 기(氣)의 주제(主帝)요, 기(氣)라는 것은 이(理)가 타는(乘) 것이다. 이(理)가 아니면 기(氣)가 근거할 곳이 없고, 기(氣)가 아니면 이(理)가 의착(衣着)할 데가 없다 91

동양문화에서는 육체와 정신을 대립-투쟁 관계로 파악하지 않고 상보-보완 관계로 파악하였다. 이는 음양론에도 내재적인 개념이지만 불교의 형이상학적 경향의 영향이 중국에 도입된 후 정립된 이기론에 더욱 뚜렷이 잘 나타나고 있다. 남자와 여자, 낮과 밤은 중국에서는 당연히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간주되나 서양에서는 대립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이기론을 집대성한 주자학의 창시자 주자(朱子)와 스피노자의 철학 및 20세기 의학의 정신과 육체와의 관계에 대한 표현과, 20세기 과학의 빛의 성질에 대한 표현의 유사성은 극히 흥미로운 일이다. 주자는 이기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理)와 기(氣)는 반드시 양면으로 보아야 한다. 곧 합해서 보기도하고 떼어서 보기도 해야 한다 92

20세기 의학은 주희, 이기론과 스피노자가 옳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신과 육체는 생명 자체의 불가분의 동등한 표현이다. 영육적 실존체의 두 가지 측면이다 93

이성과 본능은 하나인가 둘인가 하는 문제는 계속 우리에게 남아있다. 동양의 이기론과 스피노자는 하나인데 두 가지로 표현된다고 보았다. 플라톤, 계시종교, 데카르트 등이 주장하는 영혼, 이성, 정신이 본능과 완전히 분리된 별도의 하나의 존재라는 표현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동양의 인성론은 하나와 하나를 합하면 하나이며 동시에 둘이라는 역설을 주장하고 있는 듯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유클리드 기학학이나 갈릴레오와 뉴턴의 역학체계의 절대성에 안주하던 시대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나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칙에 유클리드의 기하학도 갈릴레오와 뉴턴의 역학체계도 포용 되는 상대성, 상보성, 음양론의 시대가 온 것이다.

실제로 현대 물리학에서 빛은 입자설과 파동설을 모두 포용하여야 설명되는 존재가 되었다: 빛은 하나인데 때로 입자로 때로 파동으로 설명된다. 이성과 본능, 정신과 육체처럼 이원적이며 일원적인 것이 어쩌면 철학의 사유와 자연계의 본질일지 모른다. 동양의 이기론, 스피노자, 현대물리학, 의학적 발견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동서양 인성론의 차이를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방법은, 물리학에서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을 원용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서양의 인성론은 핵심이 고전물리학의 특징을 거의 모두 닮고 있고, 동양의 인성론의 핵심은 현대물리학의 특징을 거의 모두 닮고 있기 때문이다.

4) 서양의 이성숭배: 솔방울(Pine Cone)과 영혼의 눈(Eye of Soul)

서양은 수천년간 이성과 본능을 별개로 취급하고 이성을 숭배하는 문명을 추진했다. 서양문명이 인간본성 중에서 영혼, 정신, 이성을 중요시한 역사는 아주 깊다. 정신능력을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신이 그리스인에게 하사한 영혼으로 표현하였고, 중세 계시종교 시대에는 신이 기독교인에게 주는 정신으로 표현하였고, 근세 유럽에서는 인간만이 가진 형이상학적 이성으로 표현하였다.

그리스와 이집트, 중동에서 뇌의 구조가 정신의 존재를 표상한다고 보고 그림이나 조각상에 표현했다. 그들은 인간을 해부하면 뇌 구조속에 있는 송과선(Pineal gland)이 영혼의 실체적인 형태라고 생각했다. 송과선은 솔방울처럼 생긴 분비선이라는 해부학적 표현이다. 자연속에서 “솔방울”(Pine cone)이 송과선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에 착안했다. 그래서 서양 등 계시종교를 창안한 문명에서는 송과선을 닮은 솔방울 형태의 조각을 중시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 영혼, 정신, 이성, 또는 神으로부터 받은 이해력”을 표상한다고 보았다.

이런 현상은 수 천년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그리고 최근 서양에서도 광범위하게 활용됐다. 바빌론 사람들은 神이 솔방울을 자신의 석상 중앙에 들고 있게 하는 형태로 신상을 조각했다: “타뮤즈”는 바빌로니아와 수메르 지역의 神이다. 오른손에 영혼을 표방하는 “솔방울”을 들고 있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여신의 지휘봉도 중앙 가장 중요한 곳에 솔방울이 조각되어 있다: 이집트 여신 오시리스의 왕홀에 영혼을 표방하는 “솔방울” 을 뱀 두 마리가 둘러싸고 있다. 그리스의 神 헤르메스 (로마의 神 머큐리와 동일)도 자신의 지팡이 한 가운데 오시리스 여신의 조각처럼 솔방울을 조각해 넣었다: 그리스 神 헤르메스의 지팡이, “카두세우스”(Caduceus)는

솔방울과 뱀 두 마리가 장식하고 있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神도 자신의 지팡이 끝에 솔방울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스 神 디오니소스의 지팡이, “터르서스”(Thyrsus)에 영혼을 상징하는 솔방울이 지팡이 끝을 장식한다.

“타뮤즈”는 바빌로니아와 수메르 지역의 神이다.

오른손에 영혼을 표방하는 “솔방울”을 들고 있다.

이집트 여신 오시리스의 왕홀.

영혼을 표방하는 “솔방울”을 뱀 두 마리가 둘러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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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神 헤르메스의 지팡이, “카두세우스”(Caduceus).

솔방울과 뱀 두 마리가 장식하고 있다

그리스 神 디오니소스의 지팡이, “터르서스”(Thyrsus)

영혼을 상징하는 솔방울이 지팡이 끝을 장식한다

정신 능력을 숭배하는 문화적 현상은 고대로부터 중세, 근세 까지 서양문명에서 그대로 이어져 왔다. 중세에 와서 로마 교황청이 솔방울 조각으로 성당 입구를 장식하게 되었다: 로마 바티칸 성당 입구에 있는 거대한 “솔방울” 장식이 서있다. 근세에서도 미국 뉴욕에 있는 건물 (Whitehall Building)벽에는 솔방울이 중앙에 있는 헤르메스의 지팡이 조각이 부착되어 있다: 뉴욕시의 화이트 홀 빌딩에 장식되어 있는 “카두세우스” 지팡이에 핵심인 “솔방울” 조각이 선명하다

로마 바티칸 성당 입구에 있는 거대한 “솔방울” 장식
뉴욕시의 화이트 홀 빌딩에 장식되어 있는 “카두세우스” 지팡이

지팡이의 핵심인 “솔방울” 조각이 선명하다

이 처럼 송과선(Pineal gland)이 솔방울의 조각으로 서양, 이집트와 중동지방에서 수천년간 문명의 핵심으로 등장하다가 한걸음 더 발전하게 된다. 솔방울은 이윽고 형상화되어 “제3의 눈”으로 표현된다. 실제로 뇌에 있는 송과선의 구조를 그대로 해부학적으로 표현한 조각품이 이집트에서 널리 유행하면서 이는 “눈”으로 표현되었다. 이를 이집트에서 神 “라(Ra)의 눈” 또는 “호러스의 눈”으로 부른다. 이 눈은 나아가 그리스에서는 “제3의 눈” 또는 “영혼의 눈”(Eye of Soul)으로 불리게 된다.

이집트 “호러스”의 눈. 또는 여신(女神) “라”의 눈.

이 눈은 그리스에서는 “제3의 눈” 또는 “영혼의 눈”으로 불리게 된다

“호러스”의 눈은 림빅시스템에 있는 솔방울 모양의

송과선(pineal gland)의 해부학적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플라톤은 “호러스”의 눈을 “제3의 눈”, 즉 “영혼의 눈”으로 표현했다. 우리가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혼의 눈을 사용하여 영원을 추구하자고 외친 사람은 시현론에 집중한 플라톤이었다:

우리는 이제 영혼의 눈을 사용해서 모든 사물을 관통하는 우주의 빛을 보고 영원한 진리를 향할 수 있어야 한다. 94 영혼의 눈은 신체적 눈 보다 10,000배나 중요하다. 왜냐 하면 영혼의 눈만이 진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95

중동과 서양의 이러한 솔방울이 정신을 대표한다는 철학은 널리 오래 퍼졌고 인도와 불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인도의 시바 여신의 조각상을 보면 이마에 영혼의 눈이 그려져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굴된 간다라 부처 상의 이마에 “제3의 눈” 이 있다. 이런 영향으로 불교의 부처의 상도 “영혼의 눈”이 이마에 그려졌다. 또 부처의 머리 가락도 솔방울 형태로 곱슬곱슬 한 형태로 조각된다. 우리는 부처 상에서 “제3의 눈” 과 “솔방울 형상의 머리 모양” 으로 장식된 부처 를 보게 된다.

인도 힌두의 시바 여신. “제3의 눈”이 이마에 조각 되어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굴된 간다라 부처 상. 이마에 “제3의 눈”이 있다.
“제3의 눈”과 “솔방울 형상의 머리 모양”으로 장식된 부처 상

영혼의 눈은 서양의 이성의 시대 또 그 이후에도 크게 빛을 발한다. 1789년 프랑스에서 공식 발행한 권리장전의 그림 한 가운에 “영혼의 눈”(Eye of Soul), 즉 제3의 눈이 그려져 있다. 미국에서 사용하는 1 달러짜리 지폐 뒷면에도 제3의 눈이 神의 눈의 형태로 한가운데 그려져 있다. 미국의 국장(國章), 미국의 1 달라 짜리 지폐 뒷면에 그려져 있다. “神의 눈”(Eye of Providence)이 피라미드 형상 윗 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1789 프랑스 혁명 때 채택된 “인간과 시민의 권한 헌장 선언”

“영혼의 눈”(Eye of Soul)이 그려져 있다.

미국의 국장(國章), 미국의 1 달라 짜리 지폐 뒷면에 그려져 있다

“神의 눈”(Eye of Providence)이 피라미드 형상 윗 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솔방울과 영혼의 눈을 통하여 인간의 이성을 숭배하는 사상의 기반이 서양 문명에 수천 년간의 역사를 통하여 정착하게 된다. 이성의 숭배는 서양문명의 근세에서 새로운 형식을 취하게 된다. 솔방울과 제3의 눈 같은 그림을 통한 이성 숭배에서 이성 속으로 들어가서 이를 표현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것이 서양문명이 본능에서 분리된 이성을 중요시하는 “형이상학”이다.

Notes

  1. 79

    W. F. Ganong, Review of Medical Physiology, 9th ed., Lange Medical Publication, Los Altos, 1979, p.182.

  2. 80

    John Nolte, The Human Brain: An Introduction to its Function Anatomy sixth edition, (Mosby Elsevier: Philadelphia, 2009), 4,140.

  3. 81

    Ibid., 12,875.

  4. 82

    W. F. Ganong, 위의 책, p.183.

  5. 83

    W. F. Ganong, 앞의 책, p.184.

  6. 84

    위와 같음.

  7. 85

    Allen Rickett, Guanzi, 管子, Political, Economic, and Philosophical Essays from Early China, 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New Jersey, Volume Two, p. 22

  8. 86

    제2장 제1절 참조.

  9. 87

    Carl Friedrich von Weizsäcker, 앞의 책, p.215.

  10. 88

    Noyes and Kolb, Modern Clinical Psychiatry, W. B. Saunders Company, Philadelphia, 1963, p.5.

  11. 89

    Noyes and Kolb, 위의 책, p.5.

  12. 90

    柳正東 편저, 《退溪의 生涯와 思想》, 박영문고, p.39.

  13. 91

    李栗谷의 答成浩 原書 속에서: 孫仁洙, 《栗谷의 敎育思想》, 박영사, p.38.

  14. 92

    柳正東 編著, 《退溪의 生涯와 思想》, 朱子語類 券七十四, 박영문고, p.60.

  15. 93

    Noyes and Kolb, 앞의 책, p.5.

  16. 94

    Plato, The Republic (Packard Technologies, 2005), 3,241–43, Kindle Edition.

  17. 95

    Ibid., 3,04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