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仁)과 애(愛), 모든 사상을 뛰어넘는 윤리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것이 BC 3천 년 전쯤이다. 소위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2천여 년이 지난 다음 인간사회는 곳곳에서 놀라운 문명의 꽃을 피기 시작한다. 이러한 문명이 폭발하는 시기는 한 번뿐이다. 이때가 칼 야스퍼스가 명명한 “축의 시대”다. 불과 몇백 년 사이에 인류의 위대한 스승인 공자, 노자, 소크라테스, 석가가 연이어 태어나는 시기이며, 훗날 예수와 마호메트가 그 뒤를 이었다. 이들은 인간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는 원천적인 문제에 집중하였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하여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각자 해답을 제시하였다. 기독교의 이웃사랑(love your neighbor), 유교의 인(仁, empathy), 불교의 자비(compassion), 이슬람교의 형제애(brotherly love)가 그것이다.
이러한 해답은 잘 살펴보면 한 가지로 통일된다. 이들이 인류에게 제시한 것은 동일한 윤리다. 표현 방식은 차이가 있지만 모두 “이웃사랑”을 의미한다.
인(仁)은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논어 12 안연편)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레위기 19:18, 마태복음 22:39)
왜 이웃사랑일까? 그것은 인간본성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강력한 이기심과 약소한 이타심”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를 조화시켜야 인간사회는 유지된다. 그러면 강력한 이기심을 약소한 이타심으로 포용해야 한다. 그 방법이 이웃사랑이다.
인간은 재산에 대한 탐욕과 명예에 대한 욕망이 가장 강력하고 이를 위하여 남 보다 앞서고자 경쟁하게 된다. 일부 탁월한 사람은 이타심을 이해하고 이를 인생에 적용하여 지도자(君子)가 된다. 그러나 대부분 인간(小人)은 이기심에 휩싸여 일생을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존재가 된다. 지도자도 본성에서는 소인과 차이가 없다. 즉 군자나 소인이나 모두에게 적용되는 가장 강력한 인간본성은 이기심, 즉 탐욕이다. 이러한 탐욕은 정신에 의하여 조정되고 관리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정신에 의하여 더욱 확대되고 더욱 강력 해진다. 결국 탐욕의 관리가 윤리의 핵심이다.
탐욕의 관리는 정신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인간본성에서 정신의 역할은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만 제한 되어있다. 정신은 발광체로서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정신은 반사체일 뿐이다. 이것이 인간본성에서 정신에 주어진 영역이다. 만약 정신이 본능에 내재 되어있는 행동 영역을 벗어나 발광체로서 행동을 하려고 하면, 인간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안기게 된다. 정신을 활용하여 탐욕 추구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윤리를 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윤리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신의 일탈을 제어하는 것이 윤리다.
인간-인간 관계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는 동양의 유교와 서양의 기독교를 통하여 비교하면 잘 드러난다. 우리는 공자와 예수의 가르침은 인仁, 즉 이웃사랑이라는 깊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동일한 출발점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서양에서는 계율(법치)로, 동양에서는 윤리로 인간관계를 풀어나가려고 하였다. 예수는 공자처럼 인류 공통의 윤리, 즉 이웃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쳤다. 유교에서 인간 간의 최대의 가치로 설정한 仁을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예수도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우리에게 남겼다. 믿음이나 종족과 관계없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보편적 윤리관을 남긴 것이다. 동양문명은 자연의 道와 이에 입각한 인간사회의 仁이라는 중심사상을 굳게 지켜왔다. 모든 종교나 종족, 과학적 사고를 뛰어 넘는 보편적 윤리관인 것이다. 반면, 서양문명은 종교적 교리에 따라 행위(윤리)와 믿음(종교) 사이에서 갈등과 방황을 거듭하게 된다. 기독교의 영향아래, 믿음과 사랑을 조화시키려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역사 속에서 종교는 행위보다 믿음을 중시하여 왔다. 자기보존 원칙이 작동한 것이다.
서양의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이 선한 행위를 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인간을 평가하는 중요 기준으로 삼아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양은 20세기 중반 이후에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종족 중심의 지배적 윤리관, 그리고 종교 중심의 지배적 윤리관에서 벗어나 종족이나 종교와 상관없는 보편적 윤리관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상황에 도달해 있다. 다행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실천해온 지배적 윤리관의 유산이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다. 이것은 서양철학과 사상체계에 속속들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서양 철학자들이 20세기 초까지 서양인이 생물학 적으로 동양인 보다 월등하여 서양이 월등한 문명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원인을 규명할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서양인이 동양인 보다 생물학적으로 우월하여, 서양 문명이 동양문명보다 우월하게 되었다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나 동서양인이 진화단계에서 호모 사피엔스로서 같은 유전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면 문제는 다르다. 동서양 문명의 차이는 인종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서양 문명의 차이는 인간과 주변 환경 간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다시 말하면, 주변환경 즉 문명의 차이에서 온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동양문명에서는 종교 없이 윤리 자체가 문명의 핵심이 되고 있으므로 종교적 교리 속에 포함된 윤리를 강요할 필요가 없다. 도교의 성인과 백성, 유교의 군자와 소인으로 구분하면서 윤리를 정치철학으로 삼고 있다. 성인과 군자가 바로 윤리정치의 표현이다. 서양문명에서는 윤리문제는 선악문제와 연계되어 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낙원인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다. 선악과를 먹기전의 인간은 에덴 동산의 낙원에서 일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다른 동물과 함께. 그러나 선악과를 먹으면서 낙원에서 추방된다.
정신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자신의 탐욕을 끝없이 추구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종교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은 선악과, 즉 정신 기능을 가지게 되면서 탐욕 추구를 위하여 다른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계속하여 일을 하여야 한다.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인간은 정신에 눈을 뜨게 되었고, 정신이 있음으로써 선악을 가리게 된다. 그러나 정신이 선악을 자유자재로 가리고 마음대로 하게 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면 많은 경우 神과의 약속을 어기는 결정을 하게 된다. 정신의 한계와 여기에 숨겨진 함정이다. 본능에 잠재해 있는 탐욕을 정신이 선한 쪽으로 이끌 수 있지만 악한 쪽으로 이끌어 나갈 수도 있다. 여기에 선악과와 관련된 인간에 대한 경고가 있다. 이 경고는 윤리의 필요성이다. 즉 십계명의 존재이유다.
그러나 역사는 많은 경우 윤리면에서 그 가르침이 그대로 시행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이웃사랑을 파괴하는 도그마들이 형성된다. 그러나 이런 도그마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시대적 공간적으로 한정된 가치를 지닐 뿐이다. 종교에서 신앙으로 포장된 도그마들이 있다. 유교에도 엄격한 조상숭배 방법 등 도그마들이 있다. 불교는 초기 가르침과 무관한 지옥-극락이라는 도그마 등이 도입되어 있다. 그러나 도그마들로 이웃사랑을 덮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웃사랑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의견이 다르고, 교조나 교리가 다르다고 해서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을 박해하는 자야 말로 안티크리스트(anti-Christ)라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326
모세의 십계명은 유대인들이 나라를 세우고 흥기할 때, 곧 정의를 주장할 수 있을 때 만들어진 것이었다. 신앙만을 주장하여 생존에 도움을 줄 수 있었던 환경에 기인한다. 그러나 예수가 살던 시대는 유대인이 정의를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유대민족은 로마에 정복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 당시의 지중해 지역은 헬레니즘의 사상이 퍼져 있어서 유대교도 시야를 유대민족에서 전세계인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었다. 기독교의 탄생의 원인이다.
예수 시절에는 헬레니즘이 시대 사조가 된다. 헬레니즘은 그리스 사상이 지중해 세계로 퍼진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이집트, 페르시아와 인도 정벌 이후 이루어진다. 알렉산더 사후 그의 장군들이 지중해,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 일부에 여러 나라를 건설하면서 그리스 문명이 정복 지방의 문명을 흡수하여 태어난 것이 헬레니즘이다. 헬레니즘은 지정학적으로 세계주의 성격이 강해지고,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절대진리를 추구하는 시현론이 퍼지던 때와 시기를 같이한다.
기독교도 神이 이제는 유대교의 부족주의적 성격을 벗어나 세계주의로 뻗어야 하는 시점에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모세의 율법처럼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는 정의를 주장할 수는 없었다. 이보다는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내대라”, “속옷을 취하고자 하면은 겉옷까지 벗어주라”는 새로운 윤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예수는 율법의 상대성을 파악하고 이를 초월하도록 말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는 나라를 보존하고 법을 세우러 보내진 것이 아니라 단 하나뿐인 보편적인 법을 가르치러 보내졌다.”327 구약성서에는 神의 계율로,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예수의 가치는, 부족국가의 유지를 목적으로 유대교의 정의를 주장하는 흐름과, 힘이 정의로 통하는 로마 전성시대 속에서 홀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시공을 초월하는 윤리관을 발견한 데 있다.
“내가 나를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할 것인가? 내가 나 만을 위한다면 나는 무엇인가?” 하는 탈무드의 수수께끼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예수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 아닐까? 공자도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데 예수와 같은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새와 짐승들하고 떼 지어 살 수 없으니, 내가 사람들 사이에 끼여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인가”? (논어 18:6) 유교에서는 부모의 사망후에 3년 상을 주장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논어에도 3년상을 주장하는 글이 등장한다. 그러나 공자의 인(仁)은 예수의 이웃사랑(Samaritan Love)과 다름이 없다. 공자는 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제자가 仁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공자는 대답하였다. 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논어, 12장 顏淵篇). 사마우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남들이 다 형제가 있는데 나만 없다”고 말했다. 자하가 말하기를 “내가 들은 말에,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고 부자가 되고 귀해지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 했소. 군자가 조심하여 실수하는 일이 없고, 남과 접촉하는데 공손하고 예의가 있으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의 형제들이오. 군자가 어찌 형제 없는 것을 근심하겠소.” (논어 12:5). 공자의 깊은 뜻은 결코 무조건적인 충효나 경직된 부자·군신 관계를 가르친 것이 아니다.
공자가 최고의 이상사회로 그린 것은 “자기 어버이만을 어버이로 여기지 않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는” 대동사회(大同社會)이다.328 정치도 대동사회를 지향한다: 정치란 왕은 왕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역할을 하는 것이다.329 이런 맥락에서 맹자는 백성을 저버린 왕은 의와 인을 깨트린 잔적(殘賊) 되므로 그런 왕은 제거해야 한다 고 역설하였다. 맹자는 동·서양을 통틀어 통치자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주장한 최초의 철학자일 것이다. 서양에서는 17세기 로크와 18세기 루소에 와서야 유사한 철학이 등장한다. 맹자는 정치의 중요성과 통치자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사람을 죽이는 데 창으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에 차이가 없듯이,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의 잘못으로 죽이는 것도 차이가 없다.330 서양사람으로서 공자의 참뜻을 이해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 그저 고답적인 조상숭배나 주장한 사람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331
불교의 자비사상 vs 니르바나
로마제국을 멸망시킴으로써 고대 서양문명의 몰락을 가져온 민족대이동은 유럽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중국에도 같은 시기에 ‘야만인’이 대거 침입하여 중국 전토를 점령하고, 외래문화인 불교가 유입됨으로써, 중국은 정치적으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3-6세기 사이 약 300여 년 동안 이른바 6조(六朝)시대에 역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것은 중국이 약 1500년 후에 맞을 청나라의 멸망과 서양문물 유입의 시기와 비견할 수 있는 큰 위기였다.
동양문화가 서양문화처럼 시현론의 문화였거나, 불교가 단순히 윤리에 국한되지 않고 서양문화나 동양문화처럼 정치·군사·경제 등 문화의 모든 측면을 망라하는 포괄적 문화였다면 중국 제국도 로마제국처럼 멸망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은 국가적으로 재생하여 당나라를 세웠을 뿐 아니라 불교를 “중국화”하여 중국문화의 본질을 잃지 않은 채 새로운 기운을 유입하여 문화적으로도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그리하여 중국은 약 1천 년 동안 서양에 대하여 문화적 정치적으로 우위를 유지하게 된다.
중국문화의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한 불교는 중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거꾸로 중국문화는 불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중국이 불교화되기보다는 불교가 더 많이 중국화되었다”고 하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문화 식별의 기준으로 삼아온 정신과 육체의 분리 또는 조화, 곧 시현론 문화와 불현론 문화에 비추어볼 때 이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전통 인도 종교인 브라만교도 모세의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고 있다. 인도 종교의 브라마(Brahma)는 계시종교의 神에 해당하며, 둘 다 모두 초자연적이다. 이는 우파니샤드(Upanishad)에 잘 표현되어 있다.
사람은 무지로써 그의 진실한 자아를 둘러싸고, 물질의 씌우개를 자신과 같은 것으로 여기 나니, 이것을 초월함으로써 그는 순수한 환희자인 브라만과 하나이게 되느니라.332
인도에서는 육체에서 분리된 정신(Atman)이 브라만에 도달하려고 애쓰고 있는바, 손에 닿지 않는 브라만에의 노력에서 육체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이다. 여기서 육체에 대한 고행을 하는 습관이 생긴다. 석가는 고행을 계속할 것을 거부하고 보통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요구함으로써 다섯 동료들을 놀라게 하고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그는 어떤 진리든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진리는 건전한 육체에 영양 공급을 충분히 받은 두뇌에 의하여 도달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생각은 그 시대와 그 나라에서는 전혀 새로운 이질적인 것이었다.333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깨달은 부처가 동시에 느낀 것은 당연히 너와 나는 분리될 수 없으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것은 곧 자비사상으로 나타난다.
이런 자비사상에 집중하는 현실적인 자세가 석가의 불교에서 강조된다. 석가가 전통 힌두교의 초월적 자세, 곧 형이상학적 취향을 부정하고, 현실적인 인생문제, 곧 너와 나의 문제를 중시하였다는 것은 마지히마니카야 (Majjhima Nikāya) 경(經)에 소개된 일화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마치 칸트의 이율배반 형이상학처럼, 세상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세계는 무한한가 유한한가, 영혼과 본능은 동일한가 떨어져 있는 것인가, 성자(聖者)는 죽어도 사는가 죽으면 그만인가 등의 문제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말룬캬푸타(Māluṅkyaputta)에게 부처는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말룬캬푸타, 종교의 생활은 세계가 영원이니 아니니 하는 독단론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한 독단론이야 있든 말든, 내가 없앴으면 하는 이승의 여러 가지 고통, 즉 태생(生)·노(老)·사(死)·애(哀)·비탄(悲嘆)·불행·절망은 그대로 남을 것이니까·····.334
불교는 유대교나 브라만교와는 달리 정신과 물질의 대립관계를 상정하지 않는다. 정신작용은 다른 신체부위의 작용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한 기능으로 파악된다. 부처는 브라만교의 핵심을 이루는 아트만(atman)에 대하여 설법하지 않는다. 어떤 영구불변의 형이상학적 실체에 대하여 설명하지도 않는다. 부처는 공자처럼 스스로를 하나의 인간으로 간주하였을 뿐이다. 그들은 神 또는 어떤 초월자의 능력에 의지하지도 않았다. 불교는 유교와 마찬가지로 현세를 개선하고 인간에게 좀더 나은 삶을 사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불교는 도교, 유교와 마찬가지로 시현론의 종교가 아니라 불현론에 입각한 윤리철학이 된다. 절대자나 초월자를 만들고 스스로를 그와 동일시하는 것은 결국 자기보존을 위한 이기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나와 너를 구분하는 길에 이르는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모든 개개인의 심리 속에는 두 가지 뿌리가 있다. 자기보호와 자기보존 본능이 그것이다. 자기보호를 위하여 인간은 神에게서 그것을 찾게 되었다. 자기보존을 위하여 인간은 영원히 사는 아트만, 곧 영혼불멸설을 생각해 내었다. 무지·허약·두려움 및 욕망 속에서 인간은 이 두 가지를 믿고 위안으로 삼으며 안심하곤 한다. 이것이 인간이 이 두 가지에 매달리고 광신적 정열을 보이는 이유다.335
부처가 살던 시대의 본능과 정신의 구분을 거부하고 나와 너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은 가히 혁명적 태도다. 부처는 예수처럼 자신의 가르침이 거대한 반대에 부딪힐 것을 예견하였나 보다. 형이상학적 사고에 반대하였던 부처는, 형이상학적 사고가 흔히 결론으로 도출하는 독선적 태도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것 만이 진리이며 다른 것은 모두 허위다 라고 독선적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한 인간은 신념을 가질 수 있다. 만약 그가 이것이 바로 나의 신념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신념만이 옳다고 절대적인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이것 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허위라고 말할 입장에 서있지 않다.336
고행의 관습과 결별하고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부처는 정신과 육체의 분리를 거부하였다. 브라마니즘을 배척함으로써, 부처는 너와 나의 분리를 거부하였다. 부처의 가르침은 피아(彼我)를 동일시하라는 깊은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인간사이의 관계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비에 의하여 다스려져야 한다고 보았다. 이 점에서 부처의 자비사상은 공자의 인(仁), 예수의 사랑, 마호메트의 형제애와 본질을 같이한다. 예수와 공자의 경우처럼, 부처도 가르침을 글로 남기지 않았다. 그의 가르침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3백 년에서 7백 년에 걸쳐 인도인들이 회상하여 편집하였다.337 그러므로 부처의 가르침의 진수와 그의 제자들이 전한 것 사이에 진위를 가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런 과정에서 대중불교는 니르바나(nirvana; nir는 無·空의 뜻, vã는 氣의 뜻)를 크게 중요시한다. 니르바나는 열반, 즉 번뇌와 집착이 완전히 소멸된, 불이 꺼진 상태에 도달한다. 인간이 열반에 들게 되면 인간은 고통과 윤회의 고리를 완전히 끊고 해탈 상태에 이른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니르바나가 불교의 핵심인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또 부처가 니르바나에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니르바나에 도달하기 위하여 불교를 믿기도 한다. 그러나 부처는 니르바나에 대하여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부처는 무(無) 또는 공(空)으로 니르바나를 정의한 외에 별 설명이 없다. 니르바나는 기독교의 천국, 그리스인의 행복과 궤를 같이한다. 매력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형이상학적인 표현이고 좌표다.
인간윤리의 기본은 모든 인류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이웃사랑” 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부처, 공자, 예수, 마호메트들이 남긴 이웃사랑의 윤리관은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 (love your neighbor as you love yourself)는 말을 줄인 것이다. 이웃사랑이 결국 인간의 단 하나의 윤리가 된다: “신약성서는 모든 율법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단 하나의 율법으로 귀결됨을 가르치고 있다”338 매일매일 서로서로에게 되풀이해 이야기하자. “모럴은 하나뿐이며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도그마는 각기 다르며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라고.339 벌써 오래전에 명쾌하게 설명된 이런 윤리에 대하여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다.340
공자와 예수의 가르침을 아직도 오해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살고 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을 하던 자신을 위하고 남을 위하는 것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인(仁)은 관계주의 적인 이웃사랑을 뜻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새나 짐승과는 같이 할 수 없다. 이웃이 아니면 누구와 함께하겠는가?” 라고 질문하고 있고 탈무드는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하랴? 내가 나만을 위한다면 나는 무엇이랴?” 라고 묻고 있다. 답은 이미 주어져 있다.
부처는 개인의 구원을 추구하지 않았으므로 니르바나가 그의 가르침의 진수일 수는 없다. 부처는 중생의 제도와 구원을 희구하였다. 만약 니르바나가 ‘개인의 구원’, ‘욕망의 단절’, ‘목마름의 해소’, ‘증오로부터의 해방’, ‘망상으로부터의 탈출’, ‘완전한 지혜의 상태’, ‘구출’ 등을 의미한다면, 브라만교에서 말하는 아트만이 브라마와 합치되는 상태와 다름이 없다. 이 경우 불교는 브라만교와 차이가 없어진다.
고타마(Gautama)는 말했다. 범속한 인간에게는 참 설법하기가 어렵다. 그들은 저속한 미신에 집착하여, 감정이 속삭이는 대로 쉽게 따르기 때문이다.341
당시 인도의 땅은 고타마를 환영하지 않았다. 지금도 부처를 환영하지 않는다. 브라마니즘은 일시 후퇴 후 권토중래(捲土重來)하여 더욱더 확고히 인도의 땅에 뿌리를 박았다. 예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수의 고향 나사렛은 예수를 배척하였다(마가복음 6:1-6). 유대교는 전보다 더 확고히 갈릴리 지방을 재 정복하였다. 선지자는 고향에서 박해받게 마련인가보다, 예수의 사도들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명료한 가르침을 각종 신화와 도그마로 감싸버렸다. 고타마의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행동하였다. 그들은 니르바나라는 신화를 만들어내었고 그것으로 부처의 진정한 가르침인 자비심을 감싸버렸다.
부처가 브라만교를 거부하고 나선 것은 브라만교에서 말하는 아트만과 브라마가 합일이 되는 니르바나 상태(Brahmanic Nirvana)가 타인에 대하여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는 냉정하고 메마른 개인의 구원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부처는 브라만 승려들을 중생제도에 힘쓰지 않으며 타인에 대해 자비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꾸짖은 적도 있다. 그러므로 니르바나는 타인에 대한 자비심과 연결하여서 생각하여야 한다. 부처가 가르친 니르바나는 홀로는 달성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니르바나는 타인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인도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부처는 고(苦: 고통과 고뇌)를 보았다. 그리고 그 고(苦)를 없애기 위해 욕망을 없애고자 하였다. 부처가 니르바나를 무(無) 또는 공(空)으로 설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무(無) 또는 공(空)인 채로 있을 수는 없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 (Nature abhors vacuum)는 법칙은 인간의 마음에도 적용된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미움·질시·싸움·불화의 원인이 되는 나쁜 욕망을 뽑아버릴 경우 그 자리에는 다른 것이 채워져야 한다. 부처는 그 자리가 바로 자비심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보았다.342 인간의 마음에서 부정적인 욕망들이 사라지고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욕망, 즉 자비심으로 채워질 때, 그때 인간은 자신과 남을 구별하지 않게 되는 감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부처에게 니르바나는 나와 남의 관계, 곧 자비심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니르바나는 자비심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니르바나가 충만된 자비심이고, 순수한 자비심이 니르바나다. 이런 깨달음 아래 너와 나 사이의 합일, 나아가 나와 자연, 우주와의 합일을 경험하는 바로 그때가 니르바나를 경험하는 때인 것이다.343 불교설화에 의하면 부처가 35세 때 이런 상태를 경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중생에게 알리고자 한 것이다.
2) 神에 대한 숭배와 이웃사랑이 이율배반을 피하는 길은?
우리는 왜 사는가? 라는 문제에 대한 단순한 대답은 진보를 위한 헌신일 수 있다. 비전을 쫓는 것은 인생의 의미를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진보는 정신이 앞장서서 추구하는 비전을 목표로 하게 된다. 비전의 추구는 계시종교로부터 20세기 이데올로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문명의 특성이다. 문제는 역사에 비추어 볼 때 비전의 추구는 모두 당초 설정하였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데 있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윤리를 상실하게 된다는데 있다. 계시종교나 이데올로기에서 제시하는 비전은 神의 교리나 형이상학적 진리를 전파하고 따르는 것인데, 이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면서 이웃사랑을 해치게 될 수밖에 없다. 소위 윤리와 비전 사이의 갈등을 유발한다.
유교와 기독교가 이웃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윤리를 제시하는데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공자와 예수의 경우 논어와 성경에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자의 경우 그 가르침은 분명하고 뚜렷하다. 공자는 인간 사이의 관계정립을 방해하는 어떤 다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仁을 실현하기 위하여 인간의 힘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깊은 인본주의를 고수한다. 곧 철두철미 현실세계에만 관심을 두고 있을 뿐 저 세상이나 죽음, 神에 대한 어떠한 역할이나 존재를 거절한다. “仁에 있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논어 15:35, 衛靈公篇)는 공자의 가르침이 이를 의미한다. 仁의 뜻은 좋은 스승을 만나거나 좋은 동료를 만나서 함께 깨쳐야지, 경전의 가르침이나 스승의 주입이나 神의 명령이나 강요로 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동양이 인간사회에 제시하는 단 하나의 윤리는 정치윤리에서도 “같지는 않지만 협력한다” 라는 지도자의 철학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군자는 같지 않아도 협력한다. 소인은 같이 하지만 협력하지 않는다” (논어 13:23).
그러나 예수의 경우 제자들이 남긴 가르침은 공자의 경우처럼 뚜렷하지 않다. 이 세상과 저 세상, 생과 사, 사람과 神에 모두 관심을 두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신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나타난 교훈은 신앙과 사랑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마가복음 12:30–31, 마태복음 22:36–40)라는 명확한 율법을 통해 태도를 확실히 하였다. 동시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웃사랑의 가르침은 사도 야고보에 의하여 명확히 전달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이니라···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 라.” (야고보, 2장). 결국 기독교에는 두 가지 절대적인 가르침이 있다. 이웃사랑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신앙이다. 윤리와 신앙을 모두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웃사랑” (love your neighbor)과 “神에 대한 숭배” (obey your God)가 충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앙과 윤리가 상호 배반 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神의 문명의 특성이다. 신앙(율법)과 윤리(사랑)가 이율배반이 되지 않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을 神의 단 하나의 율법으로 믿는 것이다. 이 경우 윤리와 신앙은 동일한 것이 되며 따라서 윤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멀리하여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에서 본 신앙은 서양인들이 생각해온 신앙의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윤리가 신앙을 앞서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독교를 전파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사도 바울도 신앙과 사랑 가운데서 어떤 때는 신앙을, 어떤 때는 사랑을 주장함으로써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신앙: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 장)
사랑: 그런 즉 믿음·소망·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장)
이러한 교리는 기독교 포교 과정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神의 율법이 인간이 상상한(또는 神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생각한) 율법이며, 기적으로 포장되었다고 기술한 사상가도 많다. 실제로 예수의 역사적 생애와 사도들이 기록한 신약상의 예수의 생애 사이에만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끼리 그린 예수의 생애에도 차이가 있다. 실제로 기독교가 예수의 가르침과 관계없이 이집트 아이시스(Isis) 여신이나 그리스의 아르테미스 여신 숭배의 영향을 받아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는 등 역사적으로 변천을 거듭한 것처럼344, 복음서도 지중해 각 지방에 기독교를 전파하면서 그 지방의 토속신앙이나 신화를 많이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교리가 사람들의 귀에 거슬리지 않도록 사도들은 그 시대의 사람들 구미에 맞도록 가능한 많이 각색하였고, 그 시대에 가장 널리 알려지고 받아들여진 기초 위에 교리를 세워놓았다.345
사실 예수의 윤리에 대한 중요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역사에서 보여주는 기독교는 “전심전력을 다한 여호와 숭배”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 이 두 가지 사명을 오가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웃사랑이 인류의 단 하나의 윤리이기는 하지만, 각 종파, 단체는 이웃사랑 보다는 자신의 자기보존 원칙을 따라가는 형상을 보였다.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 라는 기독교 교황청의 교리는 이웃사랑 보다 자기보존 원칙이 우선함을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내의 각 종파도 그렇다. 역사적 기독교는 각 종파가 세워졌다. 그것은 각 종파가 자기보존을 위하여 각기 다른 형식을 내세우며 서로 옳다고 주장했다. 볼테르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모든 종파는 어떤 것이든 간에 잘못과 의혹의 산물이다. 둔스스코투스(Duns Scotus)학파, 토마스(Thomas)파, 실제론자, 명목론자, 교황파, 칼뱅(Calvin)파, 몰리나(Molina)파, 얀센(Jansen)파 등은 모두 전쟁의 명칭에 불과하다. 기하학에는 종파가 없다. 아무도 “유클리드 파”니, “아르키메데스 파”니 하고 주장하지 않는다. 진리가 분명할 때는 파벌이나 분파를 만들 수 없다. 아무도 정오에 환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346
이런 신앙과 윤리의 이율배반의 상황은 동양의 道 문명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연을 창조한 절대자의 위치가 없고, 자연자체 가 道 로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윤리의 받침이 되기 때문이다. 왜 道의 문명에서는 仁, 즉 이웃사랑이 철학적으로 최고의 윤리로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仁은 파자(破字)를 하면 두 사람을 뜻한다. 즉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간섭할 아무런 권위나 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仁의 윤리관에 간섭하는 어떤 실체나 가치를 모두 부인하는데 동양 道의 문명의 특성이 있다. 성경에도 동일한 철학이 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종족을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사마리아 인에 대한 사랑” (Samaritan Love)을 명시한 것도 그렇다.
그러나 신본주의에서는 가족관계의 윤리 보다 神의 명령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계율이 동양 보다 훨씬 깊게 자리하게 된다. 율법의 중요성은 유대교에서 계속 강조되지만, 기독교에서도 되풀이된다. 사마리아인의 교훈이라는 기독교의 이웃사랑이라는 계율과의 충돌이 예시되어 있다.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제12장)
神의 문명에서는 자기보존을 위하여 神에 대한 숭배라는 율법이 꼭 필요했고, 또 인류의 유일한 윤리인 이웃사랑도 꼭 필요했다. 그런데 서양문명에서 종교와 윤리 이 두 가지 가르침이 모순되는 경우를 역사가 보여준다. 모순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절대진리가 표현되면 모순으로부터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표현의 “비오류성”(infallibility)를 주장해야 한다. 서양 종교에서 성경과 교회의 비오류성이 주장되는 근거다. 그러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표현된 道는 영원한 道가 아니다) 라는 논리에 의하면 절대진리는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같은 철학이 유교에서 표현되고 있다.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논어 2:12)는 표현은 인(仁)은 형이상학적 이론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 들어있다. 인은 모방만으로는 형성되지 않으며 스스로 체득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인은 외부에서 배워서 얻는 지식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자라야 하고 실천을 통해서 완성되는 윤리다.
맹자는 “서경(書經)의 내용을 그대로 다 믿는다면 서경이 없느니 만 못하다” (맹자 7, 진심장구하)라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공자에 의하여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덕목으로 설명된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 군자는 같은 생각을 공유하지 않아도 서로 같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인은 겉으로는 어울리지만 같은 생각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철학이다. 서양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시현론과는 반대되는 사회철학이다.
비오류성은 도그마가 되어 결국 현실에서 부정되는 길을 걷게 된다. 시현론에서 단 하나의 절체절명의 진실은 어떻게 인간에게 전해질까? 그것은 선지자에 의하여 神과 인간이 연결되면서, 神과 선지자 그리고 인간에게 전해진다. 유일신 사상에는 율법이 중요 해지며, 이는 인간이 神에게 절대 복종한다는 시작점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현실 생활에 문제가 제기된다. 역사상 그러한 유일신이 단 한 명이고 절체절명의 능력과 진리를 대표한다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2, 3천 년의 인간 역사는 다른 현실을 제시한다.
유일신이 여러 명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유일신 간의 투쟁으로 나타난다. 지금까지 어떤 유일신이 다른 유일신을 제거한 일이 없다. 또 유일신 내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하나의 종교에서 다른 해석이 나오면 이들 간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각자의 해석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들 간의 자기보존의 투쟁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일신론에서 여러 가지 종파가 생기면 종파 간의 투쟁은 다른 종교와의 투쟁 못지 않은 격렬한 투쟁을 유발한다. 한 국가내에서 내전처럼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이 생긴다. 종교개혁시대에 일어난 신교와 구교 간의 무시무시한 투쟁이 이를 증명한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시현을 받은 사람을 선지자로 모시며 절체절명의 복종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선지자의 말이 神의 말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의 역할은 유대교의 율법을 뛰어넘는 윤리에 있지만, 역사에서 볼 때 기독교는 율법에 더 집착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리스와 로마의 다신체제에서는 다른 神을 섬기는 것을 용인하였다. 그러나 4세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 서양에서 법으로 기독교가 아닌 다른 神의 형태, 석상들은 광범위하게 파괴된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지구상의 종교 가운데 가장 배타적이고 불 관용적이었다.347 그리고 르네상스 이후 서양의 형이상학자들은 중세 기독교 신학자들의 불관용적인 태도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마르크스에게서 극도의 불관용적 표현을 얻게 된다. 그는 역사적으로 “증명”된 프롤레타리아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반대자들에 대한 박해는 꼭 필요한 조치로 생각했다. 2부 1장에서 인용한 벌린의 말처럼, 그는 자신에게 동조하지 않으면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였다.
스피노자가 갈파한 대로 인간을 포함하여 우주 만물은 자기보존을 위하여 존재한다. 다른 모든 설명은, 道와 神을 포함하여 정신의 역할, 윤리와 법의 역할 등 모두, 자기보존이라는 포괄적 원칙에 포함될 뿐이다. 동서양인은 같은 인간, 호모 사피엔스로서 자기보존을 위하여 존재하고 행동할 뿐이다. 그 자기보존 원칙에 따라 동서양인은 다른 문명을 만들어내어 자기보존을 위하여 노력하였을 뿐이다. 자기보존 원칙은 철학적으로 보면 자신의 이익과 이웃의 이익을 모두 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이익만 보는 자기보존 원칙에 오랫동안 젖어 있었다. 자신의 이익만 보는 자기보존 원칙은 神의 문명에서 神의 개념을 자주 활용하였다. 그리고 이런 목적을 추구하면서 중요한 것은 “정신”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神의 문명이 그러한 상황을 자주 보여준다. 정신의 역할이 강조되면 정신과 본능의 분리가 일어난다. 초자연적 神을 믿는 것은 정신과 본능의 분리에서만 가능하다. 정신과 본능의 분리는 인간과 자연의 분리와 표리관계에 있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너와 나를 분리하게 된다.
그러므로 “전심전력을 다한 여호와 숭배”는 궁극적으로 신자와 비신자, 즉 너와 나의 분리를 뜻한다. 실제로 전심전력을 다하여 여호와를 숭배하는 사람들과, 전심전력을 다하여 알라를 숭배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전쟁이 중세부터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반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너와 나를 분리하지 말라는 주장이다. 2천 년 기독교 역사도 신앙과 윤리는 서로 조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정신의 본능에 대한 우월적인 위치는 神에게서 유래한다. 기독교 교리에서 정신은 神에게서 인간 만이 받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이로써 神의 존재와 인간정신의 존재를 동일시하는 철학이 서양의 神의 문명에 팽배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 간의 윤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신능력이 보편화하고 절대화하면 그 결론이 신앙, 형이상학적 진리, 이데올로기로 전환되기 쉽다. 그러면 그 결론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고 절대진리가 된다. 그 절대진리 앞에서는 윤리 라든가 다른 고려사항은 희생되어야 한다.
올드 브레인이 대표하는 즉 인간의 조건인 숙명안에서의 뉴 브레인의 자유를 따르겠다는 전제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기초위에 윤리를 세우면 신앙과 윤리의 충돌의 문제가 없다. 이 경우는 인본주의가 성립된다. 이웃사랑은 범할 수 없는 윤리가 된다. 그러나 숙명을 인정하지 않으면 윤리는 무너지고 인본주의는 인간주의로 타락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윤리다. 서양의 백지론은 윤리를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고, 동양은 윤리에 기본을 두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된다. 종교와 형이상학,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따르면 때로 인간의 가장 중요한 윤리인 “이웃사랑”을 무시하거나 뛰어넘게 된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인은 종교를 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그대로 배운 것이다. 제국주의, 공산주의, 파시즘도 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부모와 학교에서 배운 것이다. 종교전쟁이나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이웃사랑”의 윤리는 무시된다. 이들 모두 이웃사랑 보다 상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천당이나 유토피아를 우선시할 것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사상과 윤리의 갈등이 불가피하다.
진보사상은 정신능력의 절대화로 이루어진다. 서양문명의 특징이다. 서양문명에서는 정신적 능력을 인류의 생물학적 기능의 하나로 보는 대신, 특별한 능력으로 취급하여 다른 모든 육체적 능력과 구분하려는 경향을 띠게 되며 정신과 본능을 분리하게 된다. 정신과 본능의 분리의 외적 표현은 인간과 자연의 분리이며, 거꾸로 인간과 자연과의 분리의 내적 표현은 정신과 본능의 분리인 것이다. 정신과 본능을 분리한 정신적 문화의 산물인 만큼 본능을 부정하고, 무시하고, 죄악시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구교에서는 원죄설을 주장함으로써 정신에 대해서 본능을 부정하였고, 신교에서도 표현을 바꾸었을 뿐 여전히 정신과 본능의 구분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구분은 인간-인간 관계에서도 신자와 무신론자를 구분함으로써 너와 나를 구분하는 성향을 유발하였다. 칼뱅이나 루터에서 보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는 것을 죄악시하거나 금하였는가 하면, 칸트에게서는 철학적 표현을 얻어 나를 사랑하는 것은 전혀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348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은,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너는 사랑하지 말라”, 또는 간단히 “네 이웃만 사랑하라”로 변질된 것이다.
결국 신앙을 포함한 비전의 추구와 윤리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것은 神에 대한 숭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만든 조직이 자기보존 원칙을 따라 살아남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웃사랑이 神에 대한 숭배와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이루면 결국 인류의 보편적 윤리와 神을 지키는 사제계급사이의 자기보존 이익의 충돌이 생긴다. 교회가 자기보존을 위하여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 라는 교리를 내세운다. 탐험의 시대(Age of Discovery)라고 서양이 부르는 서양의 세계정복 시대에 서양은 교황의 이름으로 사라센인과 이교도를 정복하여 “영구히 노예로 삼을” 권한을 주는 칙서(1452년 니콜라오 5세의 「둠 디베르사스」)를 선포하였다. 수백 년간 서양인들은 그 칙서를 환영하였다. 그것은 사마리아인에 대한 예수의 이웃사랑이라는 윤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 보다는 교권이나 국권을 확립하고 확장하자는 데 목적이 있었다.349
3) 윤리는 神의 명령인가 자연의 권고인가?
이웃사랑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 중의 하나다. 서양인에게 이웃을 사랑하도록 한 것은 神의 명령이다. 서양 윤리의 근거가 된다. 이웃사랑은 자기자신의 이기심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이타심은 자신을 희생해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윤리는 자신을 희생하는 데서 나온다고 서양철학은 생각한다. 서양 철학 체계에서는 이타심(이웃사랑)과 이기심을 인성론의 측면에서 조화시킬 근거가 미약하다.
서양문명에서 윤리는 神의 명령이기 때문에, 神이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神이 명령한 윤리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다. 神이 없다면 자기 자신의 이익을 희생할 필요가 없어진다. 다시 말하면 “神이 없다면 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면 종교를 버린 사람들이 왜 윤리를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을 표시하게 된다.
유럽과는 달리 중국 같은 데서 종교적 회의론이 어떻게 윤리적 회의론을 유발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350
이신론 이후에도 서양 사상가들은 신앙과 윤리에 관하여 난제에 부딪치게 되었다. 콩트는 신학과 형이상학을 부정하면서 “한 가지 절대적인 것은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라고 외치며,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이 말한 “神이 없다면 모든 일이 허용된다”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태도를 보여주었고, 니체도 스스로를 무신론자로 선언하였다.
‘神’, ‘영혼의 불멸성’, ‘구원’, ‘저 세상’, 이런 것들은 내가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개념들이다. 이런 것들에 대하여 나는 어린시절에 조차도 전혀 시간낭비를 하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이런 것들을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던 것일까? ···무신론은 내게 어떤 것의 결과가 아니며 내 생애에서의 중요한 사건은 더군다나 아니다. 나에게 그것은 당연한 것이며 본능적인 것이었다.351
러셀은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공언하고 있고, 중국문명의 일면을 서양에 소개한 임어당도 한때 “나는 이교도(pagan)다”라고 공언하였다(그는 1959년 다시 기독교로 돌아갔다).352 이러한 태도는 스피노자가 그렇게 명쾌하게 설파한 기독교의 본질도, 공자가 애써 남겨놓은 인(仁) 사상의 본질도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콩트, 니체, 러셀, 임어당 등은 동양사상적 측면에서 보면 무신론자가 아니라 불현론자가 될 수 있다. 서양의 무신론자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은 시현론과 불현론의 차이를 생각하지 못한 사상가들의 자세이고, 서양적인 시현론 입장에서만 세상사와 철학사를 분석하자는 자세에서 나온 서양만이 간직하고 있는 특유의 거대한 철학적, 특히 윤리 차원에서, 문제가 된다.
러셀 같은 철학자도 동서양 문명의 본질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동양의 자연철학에서 나온 인성론을 이해하지 못하면 윤리가 자신을 위한 이기심의 발로인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러한 난 문제는 서양의 자연론자들에 의하여 풀리게 된다. 그들은 계시종교와 윤리의 절대적인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윤리는 神의 명령이 아니라 자연의 권고임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킨즈(Dawkins)도 서양 계시종교에서 주장하는 종교가 윤리에 미치는 역할에 대하여 의문을 표현하고 있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흔히 종교가 없이 사람들이 어떻게 선할 수 있는지, 왜 선해져야 하는지 의심한다.353
이신론은 윤리의 근원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라는 심각한 문제를 서양인들에게 제시한다. 형이상학이 중세 신학에 의해 이미 타격을 입은 기독교적 神을 부활시키지 못하고 결정적인 몰락을 재촉하자 서양인들은 모든 절대적인 것을 부정하기 시작하였다. 윤리의 실종은 시현론의 문명에서 살아온 서양인 대다수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다. 18세기 이신론(理神論), 19세기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20세기 이데올로기의 횡포를 경험한 서양인들은 윤리면에서 갈 길을 잃고 있다. 이신론에서 神은 존재하지만 계시가 아니라 정신적인 사고를 통해 이해될 수 있으며 정신을 통해 도덕과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명제 하에, 윤리의 근원으로 칸트(1724-1804)의 정언명령을 내세우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합리주의에 입각한 형이상학적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루소 (1712-1778)는 계시종교와는 다른 인간본성을 내세웠다. 인간이 원래 선하게 태어났는데 인류의 문명이 선한 인간개성을 나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원래의 인간본성의 표현인 감수성 (sensibility)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인간은 감수성에 따라서 행동하면 모든 것이 좋다는 가설을 내세워 서양 전체에서 커다란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자신의 감수성을 믿으라고 하는 것은 윤리를 무시하고 행동해도 원래 선한 인간이 하는 행동이니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된다. 결국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감수성과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이 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로맨티시즘” 이라고 부르는 낭만주의 경향을 유럽인들에게 불어넣었다. 이들은 새로운 자유를 만끽하면서, 인간을 나쁘게 만드는 것은 문명과 관련된 것이라고 문명속의 윤리를 무시하게 되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낭만주의를 주장하는 이 시점에서 서양에는 독특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루소의 감수성을 실제로 실행한 사람이 그들이다. 루소, 사드(1740–1814), 바이런(1788–1824), 셸리(1792–1822)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나쁜 일은 모두 인간이 그간 만들어낸 문명의 탓이므로 자신의 감수성만 쫓아가자는 삶을 살자고 주장했다. 이들은 모두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고 돌려주지 않은 것을 당연시하였고, 모두 난잡한 연인관계를 가지고 배반을 일 삼았으며, 본인의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며 성실성 같은 약속을 지키는 것을 멸시하였으며, 사회가 지키고자 하는 윤리라는 정서에 반항하였다. 루소는 정신과 열정 중에서 정신을 멀리하고 열정편에 확실히 서게 되었다. 그리고 루소는 종교를 정신이 아닌 감수성 측면에서 중요시하며 감정, 가슴, 경외심, 신비주의 등으로 종교를 지지했다. 루소 자신이 자신의 자식들을 모두 육아원에 맡기면서 자신은 감수성에 따라 편한대로 살아도 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루소 이후에는 정신의 시대가 이데올로기 시대(Age of Ideology) 로 접어들면서 이신론이 이데올로기로 대체되었다. 윤리는 이데올로기의 하수인이 된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인간들이 협력해서 이상향, 유토피아를 이 세상에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곧 다가올 유토피아 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당분간” 윤리를 희생하자는 것이다. 윤리의 기본 방향을 무시하고 무자비한 독재와 전쟁을 정당화해주는 논리가 된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그 예다. 공산주의에는 칼 마르크스가 주장한 10계명의 독재규범이 있다. 성경의 십계명을 본 딴 10개의 독재체제의 숫자다. 독재규범에는 모든 생산수단의 국가귀속, 망명자와 배신자의 모든 재산 몰수, 모든 교통수단의 국가귀속 등등이 포함 되어있다. 성경에서 윤리의 규범이 되어 서양 사람들로 하여금 철저하게 윤리를 지키게 한 10계명이 독재 10계명으로 대체된 것이다. 히틀러도 소련과의 폴란드 분할, 뒤이은 폴란드 침공, 소련 공격 등 자신의 생각 대로 행동하였다. 히틀러는 이런 행위를 그의 유토피아 달성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랑했다. 유대인의 인간청소도 같은 유토피아 달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조치로 강조했다. 문제는 이들 행동자체가 지극히 반 윤리적인 행동들이기 때문에 인류의 선지자들이 제시한 “이웃사랑”를 위배하는 것이 된다. 현실적으로도 유토피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유토피아가 이루어질 때까지 “당분간” 이 “영원해지면서” 윤리적 파괴 행동이 이데올로기의 최대 문제로 부각된다.
이신론 이전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가장 중요한 윤리가 神에 대한 숭배와 윤리의 충돌로 손상을 가져왔으나, 이신론 이후에는 神이 없는 세상이 되면서 윤리가 없는 상황을 유발하게 되었다. 神이 율법으로 제정한 십계명이나 이웃사랑이 개방적으로 손상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대신한 새로운 윤리, 유토피아 달성을 위한 “반 윤리”가 “윤리”로 둔갑하는 기막힌 세상을 이데올로기 시대가 만든 것이다. 독재와 인종청소가 그들의 “윤리”가 된 것이다. 이들은 식민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이 세개의 이데올로기가 서로 얽혀서 죽도록 싸우는 세상을 만들었다. 서양인들은 이를 위하여 20세기에 두 차례 세계대전을 불사 했다. 그 다음에도 냉전으로 세계를 몰고 갔다.
이신론의 출현 이후 서양의 많은 사상가들이 윤리의 기원을 찾아 헤매고 있다. 윤리는 어디서 와야 하는가? 우리가 분석한 것처럼 칸트는 윤리를 정신에 입각한 “초월적인 도덕적 의무론”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神이 없다면 모든 일이 허용된다”는 이반의 논리를 그리며 神을 되살리고자 노력했다. 니체는 인간의 기능면에서의 슈퍼히어로(super hero)라는 의미가 아닌, 도덕적으로 기독교의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의 내부의 의지로 만들어낸 도덕적 초인간을 지향하고자 했다.
동양의 철학은 도교와 유교에서 보듯이 당초부터 윤리를 기초로 한 현실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나를 바르게 하는 첫째 조건에 이기심과 이타심의 조화를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가정과, 나라, 세계를 다스릴 수가 없다: “나를 바르게 하고, 가정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편안하게 한다.” (대학 8장). 동양에서는 2천 년 전 이미 이러한 철학에서 완성되었다. 인간사회는 기본적으로 이타심이 아니라 강력한 이기심이 원천적인 힘을 불어넣게 된다. 그러나 인간본성에 있는 약소한 이타심을 반영하여야 사회는 유지된다. 결국 우리의 모든 철학은 인성론과 연계된다.
만약 이타심이 건전한 사회를 구성하는 결합점이라면, 인간사회는 자연과는 거리가 먼 존재가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이런 딜레마를 벗어나는 방안이 있다. 일견 보기에는 이타심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다위니즘의 시각에서 볼 때 “이기적” 일 수 있는가? 즉 개인의 희생이 결국은 자신의 유전인자 연속성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이런 대립된 명제에 대한 답은 Yes다.354
이신론 이전에는 인간에 대하여 전혀 연구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은 神의 모습을 따라 만들어진 것 이므로 神에 대한 연구를 하면 그것이 인간에 대한 연구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죄를 지고 태어나서 고생을 하면서 세상을 살다가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神이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이신론을 믿게 되면서 서양인들은 처음으로 인간이 무엇인지 하는 생각을 자연철학의 차원에서 하게 되었다.
서양에서는 유신론자가 절대 다수였는데 최근에는 교회를 다니는 유신론자들이 소수가 되었다. 그렇다고 서양사람들이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것은 아니다. 상당히 많은 무신론자들이 스스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불현론에 속하는 사람이 있다. 즉 스피노자처럼 본인은 결국 神을 믿는 유신론자라고 선언하는데 교회의 율법 차원에서 무신론자로 취급되는 사람들이다. “우주에는 神이 없다”를 저술한 데이비드 밀스, “만들어진 神” 또는 “神, 만들어진 위험”의 리처드 도킨스, “神은 위대하지 않다”의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은 서양에서는 무신론자지만, 동양에서는 불현론자가 될 수 있다. 절대진리를 믿고 있지만 계시종교에서 제시한 것처럼 선지자를 통하여 시현된 신앙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서양에서는 시현론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지만, 동양에서는 절대진리를 믿는 자유로운 불현론자가 된다.
神이 없는 세상에서 윤리는 어떻게 지켜야 하나 하는 문제가 서양에는 계속 많은 사람들의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 해답은 절대진리를 주장하는 시현론이 아니라 불현론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도덕경 8장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사귈 때는 인자한 사람과 사귄다. 말할 때는 믿음을 가지고 말 한다. 다스릴 때는 올바르게 다스린다. 일할 때는 최선을 다하여 일한다. 움직일 때는 때를 가려서 움직인다.” 神의 계명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누구나 찾을 수 있는 道의 윤리다
동양 문명은 계시종교의 神이 없어도 “자신과 남의 이익을 위하여” 라는 윤리가 저절로 생길 수 있고 유지된다는 자연철학에 의지한다. 남과 자기자신을 위한 “계몽된 이기심”(Enlightened self-interest)이 윤리의 원천이다. 중요한 것은 윤리의 원천이 神의 명령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인간본성에 내재해 있는 자기보존 원칙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인간본성에 의하면 정신이 아니라 본능이 윤리의 원천이 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윤리를 만들어 내는 단계에서는 중요한 정신의 역할이 있다. 이 단계에서 정신이 본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정신이 본능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서는 본능에 그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본능 중에 존재하는 이타심이다. 인성을 살펴볼 때 본능에는 강력한 이기심에 더하여 미약하지만 이타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깊이 살펴보면 이러한 “강력한 이기심과 미약한 이타심의 조화”는 인간사회를 역동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배경이다. 만약 인간이 강력한 이타심과 미약한 이기심이라는 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인간사회는 천국 비슷하지만 철저하게 무미건조하고 인간이 왜 살아가야 하는지 아무런 이유가 없게 된다. 결국 인간사회는 윤리면에서 정신을 통하여 이타심과 이기심 간의 균형을 이루자는 어렵고 힘든 그러나 역동적인 개인, 사회, 국가운영 차원에서 벌어지는 투쟁과 합의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유교의 군자 또는 스피노자식 현자는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다.
이렇게 분석하면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인간의 윤리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데카르트나 칸트 식 “정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능과 정신을 함께 아우르는 인간본성”에 있다. 본능-정신 합리주의를 주장하는 스피노자의 철학에 이르게 된다.355 인간의 행동의 원천이 정신이 아니라 본능에 의거하고 있다면 본능의 메커니즘은 숙명처럼 인간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다. 동시에 인간의 정신은 본능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로서 죽는 순간까지 본능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철학, 즉 인간의 본성을 발광체로서 인정하면서 인간의 정신이 반사체로서 역할을 한다는 철학을 가지면, 인간-인간 간의 윤리관이 나갈 방향이 정해진다. 이것이 “숙명(본능)안의 자유(정신)”라는 개념이다. 즉 본능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인간개성 양육이 생후에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인간개성 양육은 완전히 인간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이런 책임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인생은 끝이 있으나 앎은 끝이 없다” 라는 동양철학이 여기에 적용된다. 교리나 형이상학적 발견이나 이데올로기에 몰입하는 것으로 인간개성 양육을 대체할 수 없다. “군자불기” (君子不器,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가 중요한 이유다. (논어 2:12).
도덕(道德, Moralism)은 자연 법칙과 합치되지 않는다
도덕은 자연 법칙과 합치되지 않는다는 철학은 인성론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이러한 철학은 시현론이 지배하는 서양 문명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시현론에서는 인간사가 선악론의 흐름을 따라간다고 보기 때문에 도덕은 시현론에서 인간을 판가름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시대로 되돌아가서 그러한 철학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의 불현론자들에게서 인성론이 도덕과 무관함을 주장하는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불현론자의 한명인 그리스의 카네어디스(214-129 BC)는 존재론이나 확정론에 반대하면서 우연성과 개연성에 주목하라는 의견을 남겼다. 그는 도덕은 자연 법칙과 합치되지 않는다고, 즉 자연적인 정의(자연법)란 없다고 하면서, 우리가 정의라고 부르는 것은 영원할 수 없고, 비합리적이며, 한 때 필요에 의해서만 주장되는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로마에 사절단으로 파견되어 유명한 연설을 하였다. 하루는 정의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고, 다음 날은 정의를 비판하는 연설을 하여, 듣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카네어디스의 철학은 정신에 기반한 합리주의에 몰입하지 말고, 도덕과 인성론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자연주의 이론을 따르고 있다. 정의, 자유, 인권 등의 도덕적 개념의 절대성에 대한 회의를 가져야 하며, 논증으로 그 상대성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양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철학과 중세 기독교 철학을 따르면서 도덕은 神이 내린 명령으로 절대성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계몽시대에 접어 들면서도 이러한 시현론적인 철학을 계속 키워 나갔다. 정신이 神을 대체하는 상황에 적응하면서, 도덕은 정신이 명령하는 “초월적인 도덕적 의무론” 이라는 칸트의 철학이 커다란 지지자를 얻게 되었다. 칸트의 철학은 루소가 주장한 성선설과 맥을 같이 한다. 근세 서양 철학은 이처럼 성선설, 도덕 이상주의에 매료되어 있었다.
이러한 인간본성의 주장에 대하여 서양에서 처음으로 정신에 편향된 합리주의자들에 대한 반대이론을 편 경험주의 철학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철학자 중에 흄(1711-1776)이 있다. 그는 인간본성에 대한 자연론을 펼쳤고 이것이 종교적 인간본성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단자로 몰려 재판 등 위험한 처지에 빠지기도 했다.
도덕은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행동을 강화 또는 약화시킨다. 정신 자신은 아무런 역할도 못한다. 그러므로 도덕성은 우리의 정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356
동시대 사상가들은 흄을 무신론자, 또는 회의론자로 취급했다. 아직도 서양 사상가들은 흄을 회의론자로 분류한다. 그러나 시야를 넓히면 그의 사상은 부정적인 회의론이 아니라 그리스의 스켑틱스 또는 동양의 불현론자로 분류될 수 있다. 흄이 살던 당시 서양 철학은 데카르트나 칸트 같은 확실한 합리론자들의 수중에 있었다. 정신이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흄은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놀랍게도 정신이 아니라 본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며, 또 노예이기만 해야 한다. 이성은 정념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일도 감히 맡겠다고 할 수 없다.357
당시로 보아서는 놀라운 이론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의문을 자아내는 이론으로 보일 수 있다. 아직도 흄의 윤리론은 “반합리주의적 윤리론” (Ethical Anti-rationalism)으로 불린다. 그러나 흄의 이론은 지지자들이 있다. 흄의 주장은 그리스 시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살펴본 대로 카네어디스의 주장과 유사하다: 도덕은 자연 법칙과 합치되지 않는다. 우리가 정의라고 부르는 것은 영원할 수 없다. 도덕성은 비합리적이며 시기에 따라 필요에 의해서만 주장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예제도는 수천 년을 걸쳐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사회의 합리적인 윤리로 받아들여 졌다. 그러나 21세기에 노예제도는 가장 혐오스러운 인간사회의 윤리가 되어버렸다. 윤리는 많은 경우 우리가 인간본성을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있다. 특히 본능과 정신의 관계가 중요하다. 앞서 인용한 러셀의 말대로, 본능은 행동을 만들고 정신은 그것을 조정할 뿐이다.
인간본성에 대한 평가는 동서양 문명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격언을 어떻게 철학적으로 평가하는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앞서 1부 3장의 주에서 말했듯이, 道의 문명에서는 스스로 돕는 자가 道의 축복을 받지만 神의 문명에서는 神의 은총이 있어야만 인간이 스스로를 도울 수 있다고 본다.
로크와 아담 스미스의 인간본성에 대한 철학은 종교에 의존하는 면이 크다. 인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神의 힘에 의존하여야 한다는 철학이 강하다. 그리고 인간이 무엇을 하던 神이 만든 인간이기 때문에 결국은 모든 것이 잘되어 나갈 것이라는 낙관론에 의존하게 된다. 그들의 신앙에는 “神은 인자하다”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道의 문명에서는 “道는 인자하지 않다” 라는 부정신학의 철학에 의존한다. 그러면 인간사는 道가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道의 범위안에서 결국 인간이 처리해야 한다고 믿는다. 낙관론이 아니라 현실론이다. 동양사상에 의하면 스스로를 돕지 않는 인간은 하늘도 돕지 않게 된다. 神과 道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우리는 누구인가?” 를 규정하는 인간본성론과 연계 되어있다.
4) 이타심은 무엇인가: 서양, 이기심의 희생 vs 동양, 계몽된 이기심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또 개인의 내적 평화를 위하여 이타심은 필수적이다. 유교와 기독교에서 모두 이타심을 인간사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이타심은 무엇인가? 이타심의 분석에서 동서양이 인간본성과 관련하여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동양문명에서는 이타심은 이기심의 일종이다. 계몽된 성격의 이기심, 즉 남을 위하면서 자신을 위하는 이기심이다. 계몽된 이기심, 즉 이타심은 인간본성에 내재한다. 서양문명에서 본 인성론에 의하면 이타심은 인간본성에 없다. 이타심은 神의 명령이다. 이기심이 인간본성의 전부다. 이타심은 하나님의 명령 또는 정신이 명령하여 생기는 인간본성을 상쇄하는 특수한 윤리가 된다. 이타심은 인간본성에 내재해 있는가 또는 인간본성과 무관한 神의 명령(또는 정신에 근거한 윤리)인가, 이것이 이타심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다.
서양에서는 이타심은 이기심을 버리고 이를 대체한 상태로 본다. 이기심과 이타심 중에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 서양문명에서 이타심은 자기희생이다. 이기심과 이타심의 관계에서 동서양의 “보완론” 철학과 “대립론” 철학의 차이가 다시 드러난다. 이타심(altruism)은 서양사전이나 문건을 찾아보면 한결 같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다른 사람만을 위하는,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닌, 이런 뜻으로 쓰인다. 이타심은 “자기를 위하지 않는다”는 함의를 가진다 (selflessness or unselfishness). 성경에도 이타심과 이기심의 대립을 나타내고 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린도전서 10:24)
이러한 철학은 계시종교의 율법에 이어 계몽시대에 인간의 정신이 神을 대신할 수 있다는 합리주의에서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계몽시대의 철학자 칸트는 “진정한 도덕적 사랑은 남을 위한 실천”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인간을 단지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런 철학과 맥을 같이 한다. 칸트의 윤리의 출발점으로 정신에 기초한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에 의한 도덕적 의무론(deontology)을 주장했다. 그는 인간은 정신속에 도덕법칙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계몽시대에 神이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이신론의 철학체계속에서 이러한 칸트의 철학은 “코페르니쿠스의 혁명” (Copernican Revolution)으로 지칭되면서 서양 합리론자들로부터 숭앙을 받았다. 그러나 결국 “神의 율법”을 “인간의 정신”이 대체한 형식이다.
동양에서는 이타심을 “계몽된 이기심” (Enlightened self-interest)으로 분석한다. 이타심은 지속가능한 장기적인 이기심을 추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다. 공동선(共同善)이 계몽된 이기심이 된다. 동양철학에서는 공동선을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남의 이익을 추구하라는 서양식의 대립적인 주장은 찾기 힘들다. 동양에서 공동선은 자신의 이익과 남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자는 것이다. 개인주의에서 주장하는 “나”의 중요성과 관계주의에서 주장하는 “우리”의 중요성의 차이다. 동양문명은 관계주의에 입각한 “우리”의 중요성을 핵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나와 남의 이익을 함께 주장하는 공동선이 가능하다. 공자는 논어에서 공동선 즉 계몽된 이기심의 요체를 설명한다:
자기의 이익을 세우려 거든 남의 이익도 함께 세워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남이 원하는 것도 같이 이루어야 한다. (논어 6:28)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익을 위하여 남의 이익”도 추구하자는 것이다. 타인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의 이익에게도 최선이 된다는 관계주의적 철학이다. 서양의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라는 명제는 서양의 나와 남의 구분이라는 대립론에서 나온 것이다. 보완론에 입각한 동양 문명에서 볼 때 “자신의 이익과 남의 이익은 함께 추구”해야 현실성이 있다. 서양의 윤리에서 대립론 명제는 “자기보존 본능”에 위배되는 인간본성을 상정하고 있다. 자신을 버려야 남을 위한다는 대립론은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윤리는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순자는 윤리와 법이 “우리”를 위해서 있는 것임을 설명한다. 즉 윤리는 자기보존을 위하여 필요한 계몽된 이기심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윤리와 법을 모두 없애고, 정부가 하는 행위를 모두 제거하고, 벌을 준다는 가능성을 모두 제거해 버리면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 지 살펴보자. 그러면 강한자가 약한자를 괴롭히고 못살게 굴게 된다. 다수가 소수를 해치고 없애려고 하게 된다. 윤리와 질서가 사라진다. 사회는 멸망의 길로 향하게 된다. (순자 23:7)
윤리는 결국 자기보존이라는 인간본성에 소속된다. 동양에서 윤리는 도덕적 명령도 아니고 자기 희생도 아니다. 자기보존에 속하는 계몽된 이기심이다. 서양에서는 이제 이러한 철학적 사고를 시작하고 있어 보인다.
자기보존이라는 생물학적 현실이 인간의 윤리를 만들어 낸다.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자는 양도할 수 없는 필요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다른 사람도 보호되도록 도와야 한다. 만약 이에 실패한다면 우리 자신이 멸망하게 되는데, 자기보존이라는 기본 원칙에 담긴 기준을 우리 스스로 배신하고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358
인간은 다른 어떤 동물과도 달리 탐욕을 가지고 태어난다. 탐욕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윤리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인류의 위대한 선각자들은 모두 이웃사랑을 윤리의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동양문명에서 윤리는 神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깨달음으로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다.
도(道)를 존중하고 덕(德)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명령 때문이 아니라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다. (도덕경 51장)
동양문명에서 윤리를 神이 아니라 자연에서 나온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배우자는 道의 윤리다. 동양문명에 내재한 이기심과 이타심의 조화 개념은 서양에 없는 철학이다. 즉 자연이 인간에게 제시한 道를 따라간다. 道는 이기심과 이타심을 조화시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동양 인성론에서 핵심 과제는 인간 본성에 존재하는 강력한 이기심과 약소한 이타심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다. 유교나 도교에서는 이타심은 자신을 위한 계몽된 이기심으로 다룬다. 즉 이타심은 이기심의 희생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기심의 일부가 된다. 공자는 이기심과 이타심의 조화를 인간개성 양육의 중요한 덕목으로 제시한다. 인간은 자연이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듯이 자기 보존을 위하여 이기심을 줄이고 이타심을 적용하는 법을 배워야 균형이 유지된다. 도덕경도 균형을 이루는 자연의 질서를 말하고 있다. “하늘의 道는 많은 것을 가진 자에게서 취하여 없는 자를 돕는다”. (도덕경 77)
혈족선택과 상호이타주의
동양문명에서 주장하는 “계몽된 이기심”에 대하여 최근 서양의 과학적 철학자들이 이를 뒷받침하는 자연주의에 입각한 이론을 제공하고 있다. 서양 학자들이 주장하는 “혈족선택”(Kin selection)이라는 20세기 후반 조성된 발견으로 계몽된 이기심은 확실한 과학적 원천을 가지게 된다. 혈족선택은 정신이 아니라 감정에 윤리의 원천이 있음을 인성 차원에서 증명해 내고 있다. 이런 점은 서양에서 유행하는 칸트의 철학과 대조를 이룬다. 혈족선택은 칸트보다 데이비드 흄의 철학체계를 따르고 있다. 흄은 인간의 윤리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인간본성의 제한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반대로 칸트는 윤리가 감정이라는 본성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정신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서양의 일부 사상가들의 머리 속에 드디어 계몽된 이기심의 씨앗을 발견하게 된다. 도덕에 대한 판단은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감성이 원천이라는 것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영국의 생물학자 해밀턴(Hamilton)은 1964년에 혈족선택이라는 아이디어를 주장했다. 이것은 이타심이 자기 자신을 위한 유전적인 선택에 속한다는 발견에 기인한다. 이러한 인성론적인 발견으로 서양에서는 처음으로 혈족선택은 이기심에 따른다는 철학이 나온다. 도킨즈 교수는 이타심은 철저한 이기심에 속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비록 일견 보기에는 혈연선택이 이타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지만, 생물학적 유전인자의 차원에서 보면 철저한 이기심의 발로다.359
유전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매우 이기적이며 예외적으로 이타심을 보이는 그런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 본성은 강력한 이기심과 약소한 이타심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주장이다.
유전적으로 성공하는 유전인자는 아주 이기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인간도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우리의 이기적 목적이 제한된 이타심을 발휘할 때 달성될 수 있다. 예외적으로 그리고 제한된 경우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우리가 아무리 원해도 보편적인 사랑이나 일반적인 복지 같은 것은 우리의 유전인자가 지배하는 진화에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36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타심과 배려심을 윤리로 키워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태어나는 이기심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배려심과 이타심을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기적 유전자가 무엇을 꾀하는지 이해하자. 그러면 적어도 그 계획을 뒤엎을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어떤 종도 꿈꾸어 본 적이 없는 일이다.361
이타심은 사람과 동물에서 똑 같이 발생한다. 혈족선택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혈족을 도와서 길게 보면 유전적으로 자신은 죽어도 자신을 형성하는 유전자를 번식시킨다는 논리다. 상호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는 혈연이 아닌 개체 사이에 도움을 주고받는 이타 행동이다. 동물세계에서는 이러한 이타 행동이 윤리적으로 좋은 행위로 찬양이 되지 않는다. 이타심은 이기심의 일종이다. 그러나 상호 이타주의가 인간사회에서만 찬양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이타심을 자기희생만으로 취급하던 서양문명에서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상호 이타주의”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굴드(Gould)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를 설명한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역설적으로 이타심과 이기심이 모두 진화론에 따라 선택될 수 있다. 이타심은 개인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과 함께 상호의무관계를 설정하거나 또는 혈족을 도와 이타심 유전자를 복사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362
그러므로 결국 상호 이타주의도 자기보존이라는 궁극적 목적에 소속된다. 이러한 명제 하에 인간 내부에는 강력한 이기심과 약소한 이타심이 공존하며 우리는 그러한 속성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굴드 교수는 이러한 공존이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의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본다:
결국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동식물과 사람들은 “죄수의 딜레마”의 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 목적은 자기보존이다.363
이러한 게임을 사회전체로 확산시키면 번영하는 사회의 문명과 그렇지 못한 사회의 문명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공적인 사회는 유전자에 속한 상호 이타주의를 배움에 의하여 확산시키는 문명을 가지고 있다. 이타주의는 강력한 이기심에 비하여 아주 미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배움에 의하여 이를 강화시켜야 이기심과 균형을 이루며 사회에서 작동하게 된다.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에는 상호 이타주의가 존재한다. 이 논리는 유전자에 속할 수도 있고 또 배움에 의하여 습득될 수도 있다.364
우리는 이타심에 대하여 동서양문명이 어떻게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유교와 도교에서 상호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것, 즉 인간개성 양육을 배움에 의한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 동양은 계몽된 이기심으로 이타심을 평가하고 이에 대한 문명적 컨센서스를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철학 체계가 문명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시기가 BC 4-5 세기였다. 동양에서 인성론이 확립된 시점이다.
서양은 이기심과 이타심을 투쟁적으로 보고 종교의 힘을 빌려야 이타심을 인간에 불어넣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계시종교가 계몽시대를 거쳐 이신론에 이르면서 발전을 계속하여 최근에 이르러서 서양의 사상가들은 “종교적 윤리”를 떠나 자연적인 “계몽된 이기심” 즉 “상호 이타주의”라는 철학에 도달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서양의 인성론은 동양의 인성론과 최초의 자연철학적인 합치점을 발견하게 된다.